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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 오고 떠난… 꽃보다 부부

입력 | 2013-07-31 03:00:00

美 1918년생 레스&헬렌 부부
한 지역서 태어나 76년간 한 침대… 함께 병 앓다 하루 차이로 세상 떠




말년의 레스 브라운, 헬렌 브라운 씨 부부. 같은 날 태어나 76년간 부부로 살다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난 이들은 병마와 싸우는 말년에도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출처 유에스에이투데이

“나보다 먼저 죽지 마.”

두 사람은 10대 때 만나 처음 사귈 때부터 습관처럼 이렇게 속삭였다. 이 말이 현실이 됐다. 같은 날 태어난 레스 브라운, 헬렌 브라운 씨 부부는 결혼해서 76년을 같이 살다가 이런 약속을 지키기라도 한 듯 하루 간격으로 세상을 떴다. 위암을 앓던 부인 헬렌 씨가 16일 숨지자 파킨슨병으로 혼수상태에 있던 남편도 다음 날 조용히 부인을 뒤따랐다.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외신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하고 아껴주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의례적 결혼서약이 현실이 됐다”며 94세 동갑내기 노부부의 사랑을 전했다.

“바로 이 여자다!” “내가 찾던 남자다!”

젊은 시절 레스 씨와 헬렌 씨 부부. 사진 출처 유에스에이투데이

레스 씨와 헬렌 씨는 캘리포니아 주 헌팅턴파크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첫눈에 반했다. 1918년 12월 31일. 운명인지 생일도 같았다. 둘은 약속한 대로 1937년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양가 부모는 얼마 못 가 헤어질 거라며 결혼을 말렸다. 집안 환경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레스 씨의 아버지는 지주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였고 헬렌 씨의 아버지는 가난한 철도 노동자였다.

두 사람은 부모의 반대에도 결혼을 한 뒤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 정착했으며 아들만 둘을 두었다. 해군에서 사진사로 근무하다 제대한 레스 씨는 개인 사진스튜디오를 운영했다. 헬렌 씨는 간간이 부동산 관련 일을 했다.

둘의 성격은 물과 기름처럼 달랐다. 아내는 매사 단호하고 분명했지만 남편은 물렁물렁,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둘째 아들 대니얼 씨는 바로 이런 차이점 덕분에 부모님이 행복했다고 추억했다.

대니얼 씨는 “부모님은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잘 맞았고, 어려운 시기도 흔들림 없이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분의 사랑이 세상에 공개된 사실을 하늘에서라도 알면 어머니는 화냈을 테지만 아버지는 웃어넘겼을 것”이라고 했다.

결혼 75주년 기념일이던 지난해 10월 16일. 백발의 노부부는 커다란 축하 케이크를 앞에 두고 나란히 섰다.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며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나보다 먼저 죽지 마.” 레스 씨는 파킨슨병으로 오래 고생하고 있었고 헬렌 씨는 위암 판정을 받아 투병생활을 막 시작한 때여서 두 사람의 말에는 절실함이 배어났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둘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롱비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늘 손을 잡고 걸었고 수시로 키스를 나눴다. 아파서 잠을 뒤척이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노래를 불렀다. 애써 고통을 참는 남편에게 아내는 “당신 곁에는 내가 있다”고 위로했다.

동네 식료품가게 주인은 “두 사람은 늘 상대가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 볼을 비벼댔다. 한번은 헬렌 씨가 남편의 볼을 쓰다듬으며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지 않았나요’라고 물어서 웃고 말았다”고 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최근 레스 씨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헬렌 씨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호스피스는 남편이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세상을 먼저 떠난 쪽은 아내였다. 스트레스 탓인지 위암이 급격히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먼저 죽길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절대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간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지 못했고, 의식이 없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지 못했으니 두 분 모두 소원을 이룬 셈이죠.”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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