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집트 ‘파라오 알시시’ 떴다

입력 | 2013-07-31 03:00:00

전역에 찬양 사진-포스터 물결… 사실상 통치자로 신격화




검은색 선글라스, 온갖 메달로 장식된 군복….

이집트 전역에서는 요즘 군부 실세로 떠오른 압둘 파타 알시시 국방장관(58·사진)의 사진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1950년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군부 지도자 압델 가말 나세르(1918∼1970)와 비교해 ‘인터넷 시대의 나세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로이터통신은 30일(현지 시간) “아랍 최대 국가인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카리스마 넘치는 군부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 현상이 권위주의 정부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이로에는 알시시와 나세르의 사진을 함께 내건 포스터도 등장했다. 국영TV와 신문은 물론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알시시 국방장관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이젠 정상적 수준을 벗어나 신격화 양상을 띠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에 큰 역할을 한 알시시 국방장관에 대한 지지자들의 숭배는 무슬림형제단과의 대결이 본격화한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는 24일 TV 기자회견에서 “폭력과 테러리즘에 맞서 봉기해 달라”고 직접 호소하면서 정치의 중심에 나섰다. 그 직후 카이로에서 벌어진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유혈진압으로 80명 이상이 사망했다.

권위주의 정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무함마드 이브라힘 이집트 내무장관은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축출 이후 폐지됐던 악명 높은 비밀경찰인 ‘국가안보조사국’을 재건하겠다고 29일 발표했다. 또한 이집트 과도정부는 총리에게 국가비상사태 선포권과 군의 민간인 체포 허가권을 부여할 예정이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집트 군부의 움직임이 1954년 나세르가 권력을 장악했던 방식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알시시 국방장관은 내년 이집트 대선 출마 여부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일간지 알와탄은 “당장 대선이 치러지면 그(알시시)가 당선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며 “사람들은 그를 이미 사실상의 통치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부의 지나친 역할 확대에 처음엔 무르시 축출을 지지했던 자유주의 세력 일부가 반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모하메드 아부 엘가르 이집트 사회민주당 대표는 “2011년 이후 아랍세계에 불어온 민주주의의 희망을 꺼뜨릴 ‘제2의 나세르’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무르시 전 대통령도, 군부도 지지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제3의 광장’이란 그룹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주말부터 카이로 시내 스핑크스 광장에서 무르시 전 대통령과 알시시 국방장관 사진 모두에 ‘X’자 표시를 한 포스터를 내걸고 집회를 가졌다. 카이로 시내타흐리르 광장의 군부 지지 시위대, 카이로 외곽 나스르시티의 라바 알아다위야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농성하는 친무르시 시위대와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었다.

‘제3의 광장’ 활동가인 피라스 모크타르 씨는 “이집트 사회의 양극단 분열을 막고, 군부나 종교가 아닌 시민이 이끄는 민주정치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