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판 ‘한국 미술사’ 펴내는 부르글린트 융만 美 UCLA 교수
2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부르글린트 융만 미국 UCLA 교수. 융만 교수는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아름다운 궁중 자수’를 관람하려고 예정된 인터뷰 시간보다 1시간가량 일찍 도착했다. 그는 “체류 기간을 넉넉히 잡아도 보고 싶은 게 많아 매번 시간에 쫓긴다”고 아쉬워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차분한 말투였지만 메시지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2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독일 출신의 부르글린트 융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58)는 주로 한국말로 대화하다가도 좀 더 정확한 의사를 밝히고 싶을 때는 영어로 설명을 덧붙였다. 올 하반기 10년간 공들인 영문판 ‘한국미술사’(가제) 출간을 앞두고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한국학자가 쓴 한국미술사가 해외에 번역된 사례는 있지만 외국인이 한국미술 통사 책을 내는 것은 처음이다.
“단순히 한국미술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의 텍스트는 지양했습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일본과의 교류가 문화적 자양분으로 크게 작용했어요. 이런 ‘관계’에 대한 고찰이 중요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얘기하면서 프랑스나 네덜란드와 주고받은 영향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사실 융만 교수의 이런 비평에는 한국미술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다. 1973, 74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글을 배운 뒤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문화에 푹 빠졌다.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쓴 박사학위 논문 2편 ‘중국 절파 화풍이 조선 회화에 미친 영향’(1988년)과 ‘조선통신사를 통해 살펴본 조선과 일본의 미술 교류’(1996년)가 모두 한국미술사를 다뤘다. 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시각은 이미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부터 형성된 셈이다.
그의 애정과 노력은 1999년 UCLA 미술사학과에 부임하며 꽃을 피웠다. 외국 대학이 한국미술 전담교수를 채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융만 교수는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베를린대 동아시아미술사학과에서도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그는 “선택을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면서 “사랑하는 한국미술에만 전념할 수 있기에 UCLA를 택하며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미술의 매력은 무엇일까. 융만 교수는 “기자들은 왜 그런 걸 궁금해하냐”며 “한국미술은 단정 짓기 어렵다”고 응수했다.
“고려시대 미술은 우아하고 고급스럽습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매우 엄중하면서도 담백하죠. 하지만 이 역시 전체적으로 그런 문화적 분위기가 존재했다는 것이지 획일화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아름다움이 한국미술에는 공존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미는 무엇이라고 정의해버리면 한계를 그어버리게 됩니다. 흔히 일본은 화려하고 중국은 웅장하다고 하는데, 한국도 그런 멋이 존재하거든요.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게 한국미술입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차정윤 인턴기자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