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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마지막 선물

입력 | 2013-08-01 03:00:00


그분의 마지막 선물을 받은 것은 4년 전, 지금처럼 더운 여름날이었다. 두 달 전에 돌아가신 분이 소포를 보낸 것이다.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전율이 스쳤다. 이럴 수가! 뜻밖에 선물을 받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그분의 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그 그림을 꼭 선생님께 보내드리라고 하셨어요.”

어떤 사람은 날마다 만나도 타인이고, 어떤 사람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 남편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인 화가 김치현 선생이 그런 분이었다. 우린 서울에, 그분은 전주에 살기 때문에 얼굴을 자주 볼 순 없었지만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그런 분이었다.

삼사십 년을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하고 따뜻한 정을 보내주던 그분이 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던 2008년 5월에 우리 부부는 그분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전북 부안 금구원조각공원에서 ‘달빛음악회’를 연 것이다. 지인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남편은 깜짝 이벤트로 ‘34년 만에 쓰는 편지’를 낭송했다. 34년 전에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 받았던 그분의 편지를 먼저 낭송하고 그에 대한 답장을 읽은 것이다.

그분은 자신이 보낸 편지를 그때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과 “이렇게 늦게라도 답장을 쓸 수 있도록 살아줘서 고맙다”는 사연에 눈물을 닦았다. 그 이후 건강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하더니 이듬해 봄에는 전시를 연다고 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괜찮다며 안심을 시켜서 우리 부부는 별다른 마음의 준비 없이 전시 오프닝에 참석했다. 아, 그런데 앰뷸런스에 실려와 휠체어를 타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몇 달 사이에 몰라보게 수척한 모습에 상심하는 우리에게 곧 일어설 것이니 걱정 말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전시가 끝나자마자 한 달도 못 되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가 그 그림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기나긴 세월에 그 정도의 이심전심은. 마지막 전시에서 그림이 많이 팔렸고 나머지 그림은 고향인 고창군립미술관에 모두 기증했는데 하필 그 그림만 남겨 우리에게 보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 이후 ‘봄봄’이라는 제목의 그 그림은 우리집 거실에 걸려 있다. 봄날처럼 온화하고 순하던 그분과 딱 어울리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사람은 향기로 남는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봄의 향기로 남은 그분을 생각하며 선물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좋은 인연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진정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늘 봄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고 싶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