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그 그림을 꼭 선생님께 보내드리라고 하셨어요.”
어떤 사람은 날마다 만나도 타인이고, 어떤 사람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 남편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인 화가 김치현 선생이 그런 분이었다. 우린 서울에, 그분은 전주에 살기 때문에 얼굴을 자주 볼 순 없었지만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그런 분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보낸 편지를 그때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과 “이렇게 늦게라도 답장을 쓸 수 있도록 살아줘서 고맙다”는 사연에 눈물을 닦았다. 그 이후 건강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하더니 이듬해 봄에는 전시를 연다고 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괜찮다며 안심을 시켜서 우리 부부는 별다른 마음의 준비 없이 전시 오프닝에 참석했다. 아, 그런데 앰뷸런스에 실려와 휠체어를 타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몇 달 사이에 몰라보게 수척한 모습에 상심하는 우리에게 곧 일어설 것이니 걱정 말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전시가 끝나자마자 한 달도 못 되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가 그 그림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기나긴 세월에 그 정도의 이심전심은. 마지막 전시에서 그림이 많이 팔렸고 나머지 그림은 고향인 고창군립미술관에 모두 기증했는데 하필 그 그림만 남겨 우리에게 보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 이후 ‘봄봄’이라는 제목의 그 그림은 우리집 거실에 걸려 있다. 봄날처럼 온화하고 순하던 그분과 딱 어울리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사람은 향기로 남는다는 생각을 한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