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경제부 기자
주민센터에 들른 기자는 깜짝 놀랐다. 나를 기다려 준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10여 명의 직원이 그 시간까지 서류더미에 파묻혀 일하고 있었다. 야근이 잦으냐는 질문에 직원은 “일주일에 3, 4일은 이렇게 일한다”고 답했다. 위로해준답시고 “직원이 더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물으니 빨리 서류나 쓰고 가시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곤에 찌든 직원에게 차마 “왜 그렇게 불친절하세요”라고 받아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흔히 공무원을 칼퇴근, 철밥통의 대명사로 부른다. 하지만 기자가 주변에서 만난 수많은 공무원은 웬만한 민간기업 직원 이상으로 격무에 시달린다. “일이 너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회복지 공무원, 주당 80시간 넘게 현장을 지키는 소방관…. ‘24시간 민원실’ ‘토요일 근무 주민센터’ 등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그에 맞게 인력을 늘렸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정부 기조를 눈치 챈 일부 부처와 산하기관들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주가조작 엄단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새 임무’를 맡은 금융위원회는 각각의 업무를 맡을 국·과 단위 조직부터 만들었다. 안전이 중시되는 추세를 따라 각 지자체는 ‘안전총괄과’ ‘안전기획관’이라는 이름의 새 자리를 신설했다. 새 정부 기조에 맞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탓할 바는 아니지만 ‘수명이 다 된’ 자리를 없앴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2008년 직원 수가 2472명이던 KDB산업은행은 정책금융공사 분리와 민영화 추진으로 몸집을 줄였어야 했는데도 5년 새 453명이 오히려 늘었다. 논의 중인 산은·정책금융공사 통합이 이뤄지면 직원 수는 3340명이 된다. 역할은 그대로인데 5년 새 몸집만 1.3배로 커졌다.
거창하게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을 하자는 건 아니다. 매일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해야 업무가 돌아가는 주민센터에는 인력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많은 국민은 공무원이 늘어난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국민들이 마냥 공무원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국민들이 가려워하는 곳이 어디인지, 인력이 꼭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를 먼저 따지지 않는 정부의 ‘무심함’이 답답해서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