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수료 200원을 아끼려면?
어떤 내용에 대해서 정보공개를 청구할지 고민하는데 송전탑 보도가 떠올랐다. 한전이 경남 밀양시 부북면에 송전탑을 설치하려 한다는 내용. 주민이 우려하는 환경오염에 대한 정보를 한전과 밀양시에 청구했다. 웹사이트에 이름(이미나) 등을 입력해 가입하고 정보공개청구 신청을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은 황당하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보공개청구를 한 이유가, 그냥 궁금해서? 알겠습니다.” 그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상의한 뒤 연락하겠다고 했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박하영(21)은 공무원이 가장 민감해하는 항목을 건드리고 싶다고 했다. 사회과학대 부학생회장이라 학교행정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평소에도 많았던 친구. 등록금 사용 내용, 실험실습비…. 그런데 등록금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쓰는 정부에는 어떤 정보를 청구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공무원의 업무추진비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포털에서 검색했더니 업무추진비는 여러 종류였다. 직책급, 정원가산, 기관운영, 시책추진, 부서운영 등…. 다섯 가지 항목을 모두 청구했다. 경기 용인시와 수지구는 물론이고 경기도와 지사를 대상으로 했다. 서초구청도 추가했다. 현금으로 지출되는 업무추진비를 매일 구청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침을 추진한다는 뉴스를 접해서다. 정말 투명하게 공개할지 알고 싶었다. 하영이는 5월 29일 새벽, 정보공개청구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정보공개를 신청하려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학생은 교육자료나 연구 목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소속 기관장의 확인을 받아 청구하면 수수료를 감면받을 수 있다. 하영이 역시 교육적인 목적으로 청구하기에 수수료를 감면받으려고 했다. 자꾸 에러 메시지가 떴다. 30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눈물을 머금고 신청을 포기해야 했다.
수수료는 200원. 소액이지만 감면받으려면 소속기관장의 확인이 필요하다. 강의계획서를 첨부하면서 수수료 감면을 요청했더니 도에서는 총장 확인서를 보내라고 했다. 지연이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법인총무과→총무과→사회과학대 교학행정1팀→교학행정과장. 미로 찾기처럼 전화를 돌렸다.
지연이는 정보공개청구 신청서를 인쇄해 교학행정과장을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학장의 확인만으로 수수료를 100원 감면받았다. 담당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00원 때문에 이러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렇게 하느냐.” 그에게 되묻고 싶은 말이었다. 200원 때문에 왜 이렇게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냐고.
○ 밤중과 주말에 전화를 거는 이유?
하영이는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일주일 정도가 돼야 연락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 실제로는 달랐다. 29일 오전 9시부터 담당 공무원들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이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부재중 전화가 기관별로 3∼5통씩 왔다. 어느 기관은 8통이나 걸었다.
하영이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집요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연락했다. 어느 공무원은 오후 10시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니 공무원들은 다른 번호로 걸기도 했다. 하영이는 기자에게 말했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급할 때는 업무 외 시간에도 전화를 걸더라고요.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정보공개를 철회했어요.”
하영이가 겪은 일은 약과였다. 같은 수업을 들었던 조원동 선배(25)에 비하면 말이다. 선배는 전국의 광역시에 공무원의 해외연수와 해외출장 내용을 요청했다. 며칠 뒤 대전시청이 선배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공무원은 아들이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 지금 학생인지, 왜 이런 자료를 요구하는지를 물었다. 어머니는 정보공개를 청구한 줄도 몰랐기에 인적사항만 얘기했다.
공무원은 그 다음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학생이냐, 리포트에 쓰려고 요구하는 거냐고 물었다. “언론사 입사시험에 대비해 기획기사를 연습해보려고 한다”고 대답했더니 “언론사에 투고하는 거냐, 다른 곳에도 자료를 요구했느냐”고 다시 물었다. 정보 하나를 얻으려면 공무원의 질문공세를 견뎌야 했다.
어느 학생은 기자가 전화를 걸자 이름과 청구기관명을 인용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공무원이 어떻게든 자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어떻게든 해를 끼치지 않겠느냐면서.
손 교수님은 정보공개청구 실습을 4, 5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시켰다. 법이 조금씩 개정되고 공무원의 태도 역시 조금씩 나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확실히 느낄 정도로 개선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교수님은 특히 공무원이 무슨 권리로 청구인의 신상을 묻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신상을 물어보면 사람이 위축된다. 우리나라처럼 관존민비 사상이 있는 곳에서는 겁이 나지 않겠느냐. 더욱이 집에 전화해 부모에게 학생의 신상을 물어 보면 부모로서는 가슴이 내려앉을 일이다.”
○ 내가 공무원이 된다면?
어느 친구는 여성가족부에 한부모가정 실태와 지원항목, 사업계획에 대해 청구했더니 비공개 결정이 났다고 한다. 이유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 공무원은 말을 다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다시 걸어 왜 말하는 도중에 끊었냐고 물었더니 공무원은 “실수였다”고 해명하면서 “내 소관이 아니다. 아는 바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고 한다.
하영이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행정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은 상당수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잖아요. 그 친구들이 합격해 공무원이 되면 이렇게 일처리를 하겠지라는 생각에 서글퍼지더라고요. 내가 공무원이 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자신이 솔직히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굳게 다짐했습니다. 어디에 취직해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한테 전화했던 공무원들처럼 되진 말아야겠다고요.”
미래 세계에서의 국민통제를 다룬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른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 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