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의지 14세 여중생 “도와주세요” 한마디에… 넉달 넘게 업어나른 서울 응봉파출소 직원들
지난달 22일 오후 김서연(가명·14) 양을 업고 언덕 위 집으로 데려다 주고 있는 응봉파출소 경찰들. 김 양을 업은 김준영 경사를 김종웅 경위가 휠체어를 들고 뒤따르고 있다. 서울 성동경찰서 제공
김서연(가명·14) 양은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좀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휠체어에 의지한 두 다리는 태어날 때부터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김 양은 선천성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언제나 김 양을 업고 집에 데려오던 어머니는 3월 11일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갔다. 하루하루 근근이 일을 해 식구를 부양하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에게 대드는 오빠도 김 양을 돌봐주지 못했다. 김 양은 학교에 가기 위해 사투했다. 난간을 붙들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한 계단씩 밀었다. 할머니는 손녀를 받쳐주다 온통 땀에 젖었다. 내려갈 때는 어찌어찌 해냈지만 오르막에서까지 할머니에게 기댈 순 없었다.
이날부터 소녀와 경찰은 매일 하굣길 친구가 됐다. 처음 김 양을 업어 준 경찰관은 파출소 전화번호와 명함을 건네주며 언제든 전화하라고 일러줬다. 그때부터 넉 달 넘게 김 양은 매일같이 수업을 마치면 학교에서 500m가량 떨어진 응봉파출소까지 혼자 휠체어를 밀고 온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던 경찰 두 명이 나가 한 명은 김 양을 등에 업고 다른 한 명은 휠체어를 들어준다. 파출소 주간 당직 팀 직원들이 매일같이 돌아가며 김 양의 하굣길을 도와주고 있다.
파출소를 나서 언덕길 10여 분을 지나 다세대주택 층계를 다 오르면 허리가 뻐근하고 온몸이 땀에 젖지만 경찰들은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김준영 경사(40)는 김 양을 업고 언덕을 오를 때마다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고 했다. 김 경사의 일곱 살 딸도 3급 장애를 갖고 있다.
김 양의 다세대주택에 오면 경찰들은 항상 2층에 내려준다. 김 양의 집은 3층인데 왜 그럴까. 양창복 응봉파출소장(51)은 “일부러라도 근육을 쓰지 않으면 영영 못 걸을 것이라는 게 할머니의 생각”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 양이 난간을 붙들고 혼자 마지막 12개의 계단을 오를 때까지 경찰과 할머니는 옆에서 지켜본다.
김 양의 할머니 배외순 씨(79)는 “아이가 엄마 없이 눈보라 치는 길을 다녀야 할 겨울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 활동보조 지원의 대부분은 장애 등급 2급부터 적용된다. 원래 지체장애 1급으로 등록돼 있던 김 양은 지체장애에서 뇌병변 장애로 분류가 바뀌면서 2011년 6월 장애등급이 3급으로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이 김 양을 업고 언덕을 오르는 사진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 서울지방경찰청 페이지에 올라 누리꾼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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