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횡령’ 재판 증언 촉각

최태원 SK 회장
최 회장 항소심 선고공판은 9일로 예정돼 있다. 재판부는 최 회장 측이 김 씨를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변론재개를 요청하면 이를 받아들일 것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선고가 연기되고 공판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김 씨가 증인으로 채택돼 만약 최 회장이 주장해온 대로 “내가 2008년 10월 당시 SK그룹 계열사 2곳이 출자한 451억 원의 선지급금을 최 회장 몰래 횡령한 주범”이라고 진술하면 항소심 판결이 1심(징역 4년)보다 최 회장 측에 유리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 김 씨 진술에 따라 최 회장 측 주장에 힘이 실리면 그간 최 회장이 수차례 진술을 번복한 끝에 내놓은 최후 진술에 대해 재판부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이 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져 재판부가 선처할 수도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은 검찰 수사 초기부터 1심 선고가 나기까지 김 씨를 언급하지 않다가 항소심에 접어들어서야 사실상 김 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결심공판에서 김 씨에 대해 “10여 년간 믿어온 사람에게 배신당한 걸 이제야 발견해 스스로 원망도 들고 화도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씨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전격 체포된 배경은 아직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우연히 이 시점에 잡힌 것일 수도 있지만 검찰 내부에선 최 회장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 김 씨를 회유해 법정에 세우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 회장은 1심부터 항소심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진술을 번복했다. 재판부는 “김 씨의 요청에 따라 비정상적인 절차로 펀드를 만든 잘못은 있지만 김 씨가 펀드 자금을 횡령할 줄 몰랐다”는 최 회장의 진술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재판부의 의심을 풀기 위해 최 회장 측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김 씨의 진술을 앞세워 극적인 반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김 씨가 어떤 진술을 한다 해도 최 회장 형제의 유죄 주장은 굽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최 회장 측은 김 씨 체포에 자신들이 간여했다는 검찰 측의 의심은 터무니없다는 태도다. 최 회장 측은 오히려 지난해 6월부터 최 회장과 관계가 틀어진 김 씨가 자신의 처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최 회장이 모든 사안을 주도했다는 식으로 진술을 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 씨의 국내 송환 시기는 대만 당국의 결정에 달려 있다. 대만이 그를 국외 추방하면 검찰은 그의 신병을 국내에서 인도할 수 있다. 대만은 우리와 범죄인 인도협정은 체결돼 있지 않지만 주요 범죄인에 대해서는 최대한 사법적 협조를 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석·장선희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