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에 전화를 걸어온 소년은 잔뜩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지역 경찰은 소년의 호소에 대한 책임을 미루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이들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
7월 31일 밤(현지 시간) 2007년형 메르세데스 벤츠가 미국 로드 아일랜드 주의 국도를 폭주하고 있었다. 운전자인 오웬 길맨(49)은 아들(10)-딸(12)과 함께 야구 경기를 관람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날 길맨 가족이 응원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맞아 연장 15회까지 치르는 혈전 끝에 스티븐 드루(30)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경찰에 따르면 길맨은 이날 밤 11시 25분경 고속으로 달리는 와중에 지프 그랜드 체로키의 옆구리와 충돌했다. 들이받힌 지프는 그대로 15미터 이상 밀려나 길 옆 둑 아래로 떨어져 뒤집어졌다.
이 사고의 첫 목격자인 젠킨스씨는 "(길맨의) 차가 비행기처럼 튀어올라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길맨의 딸은 그대로 차 뒷자리에 있었지만, 아들은 충돌 순간 차 앞쪽으로 튕겨나가면서 머리를 부딪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자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젠킨스는 급한 대로 냅킨으로 지혈하는 한편, 근방에 사고가 났음을 알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젠킨스는 이때 눈을 뜬 소년이 "사고가 난 거냐. 마치 꿈을 꾼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소년의 아버지는 제 정신이 아닌 듯, 자신의 아이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라며 "그가 무언가에 취해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길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잘못 들어, 사고가 난 길은 그의 집 방향으로 가는 길도 아니었다.
이 사고로 길맨의 아들과 딸, 그리고 지프 운전자 마이클 퍼닉(23)이 각각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병원으로 후송돼 응급조치를 받은 결과 건강에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길맨을 신고한 것이 바로 길맨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경찰 측은 "소년은 '차라리 이 차에서 뛰어내리는 편이 낫겠다, 그게 이 차를 이대로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신고 전화 내용을 설명했다.
길맨은 3년 전 아내 재클린과 헤어진 이혼남이었다. 재클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이혼으로 아이들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교통사고는 어쩌면 길맨의 두 아이에게는 부모의 이혼으로 입은 상처 못지 않게 큰 정신적 타격을 받은 '공포의 밤'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길맨은 자신의 부모님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25만 달러의 보석금을 지불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 중이다.
김영록 동아닷컴 기자 bread4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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