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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권위에 똥침을 날리는 이유

입력 | 2013-08-02 17:16:00

‘B급 문화, 대한민국을 습격하다’




이형석 지음/ 북오션/ 304쪽/ 1만5000원

대한민국은 지금 비주류 전성시대다. 싸이에서 시작한 ‘B급’ 문화 코드가 기성의 권위와 엄숙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유쾌, 상쾌, 통쾌한 반란이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사회, 문화 그리고 정치적 배경이 결합해 거대한 강물로 형성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왜 툭 까놓고 덤비는 B급에 열광할까.

“요컨대 ‘B급’은 주류 문화의 엘리트주의나 고상하고 세련되며 고급스럽고 값비싼 예술과는 거리를 두고 창조된 예술이나 문화다. 거기에는 ‘의도적인 싼티, 촌티, 날티’가 배어 있고, 고급 예술 및 주류 문화에 대한 야유와 조롱, 비판이 깔려 있다. 이를 통해 ‘B급’은 예술의 대중주의와 문화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B급은 주류 질서와 고급 예술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자 개성 및 개인주의의 한 양식이며, 사회적으로는 상위 1%가 아닌 99%의 목소리이자 ‘존재 증명’이다.”

저자는 A급과 B급의 문화적 혈액형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언어라고 진단한다. A급은 글의 세계이고, B급은 말의 세계이자 구어체다. 메이저 미디어, 즉 A급에선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사용하고, 맞춤법도 정확해야 하며, 표준어 규정에 맞는 표현만 써야 한다. 반면 B급 미디어는 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아닌, 최근 유행하는 조어나 유행어, 은어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맞춤법보다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을 선호한다.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만큼 B급 문화의 바탕은 유희와 쾌락주의이기 때문에 때로는 욕설과 비속어도 용납된다.

일반적으로 저급하다는 느낌을 주는 B급 문화는 ‘클래식’이 아닌 대중문화로부터 더 강력한 영향을 받으며, 대중문화에 대한 열광과 도취를 보여준다. 또 주류 사회의 지배적 감성, 취향, 가치, 세계관에 대한 반감과 야유, 조롱, 거부 등 다소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따라서 청소년을 포함하는 10~20대의 청년문화이기도 하다. 그들은 주류로부터 이탈한 집단이 생산한 예술작품이나 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B급 감성은 차가움과 그것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라는 뜨거움이 상반되지만 짝을 이룬다. 양자를 매개하는 것은 ‘멋있다’ ‘쿨하다’는 감탄이다. ‘쿨하다’는 지배적인 가치관과 도덕, 윤리와는 상관없이 특정 하위 집단, 즉 따라 하고 싶은 멋진 스타일이라는 뜻을 담은 말이다.

B급에 진지하고 심각한 것은 없으며 ‘웃기고 자빠져야 B급’이다. 점잖은 얼굴로 호박씨를 까는 사람을 마음껏 조롱한다. MBC TV ‘무한도전’을 보자.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남의 지위를 질투해 빼앗으려 들거나 돈에 대한 욕심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서열을 만들어 노골적인 지배·복종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각자 생긴 대로, 제멋대로 놀자는 태도는 팬들로부터 환호를 이끌어낸다.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과장된 행동으로 MBC TV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를 이끌어온 강호동도 점잖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직접적이고 본능적인 반응과 시청자 눈높이, 혹은 더 낮은 눈높이와 목소리로 출연자를 대한다.

근엄한 왕도 B급 앞에선 무너진다. B급 감성은 왕의 언어를 바꾸고, 굳은 표정에 익살맞은 웃음을 가져다줬다. 성군 세종이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연발하고 광해군은 자신과 꼭 닮은 가짜를 허수아비로 앉힌 뒤 조정을 뛰어다닌다. 궁궐 안에 갇혔던 왕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쪽은 욕망이 거대하게 부풀고, 다른 한쪽은 좌절과 패배가 넘치는 ‘승자 독식’ 사회가 됐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은 사회 피로도와 압박감을 극대화했다. 그 균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폭발한 상상력은 99%의 숨통을 틔워준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우량 인생과 불량 인생을 갈라내고 있다. 기준은 더욱 가혹해지고 더 많은 삶들이 낙오자의 대열로 추락한다. 불량 인생들이 불량 사회에 던지는 들끓는 욕망의 목소리 그것이 바로 B급 문화가 아닐까.”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3년 8월 6일자 89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