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건강관리 앱 ‘눔’-소셜미디어 ‘빙글’… 왜 미국서 다시 돌아왔을까
설립 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이른바 ‘본 글로벌(Born Global)’들의 열기가 뜨겁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에 앱(응용프로그램)을 등록하기만 하면 세계에서 사용자를 끌어올 수 있는 모바일 환경 덕분이다.
이 가운데 건강관리 앱 업체 ‘눔’과 소셜미디어 업체 ‘빙글’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창업을 한국에서 처음 했지만 벽에 부닥친 뒤 “큰 꿈을 이루겠다”며 모바일의 본고장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금의환향해 국내에 ‘제2의 둥지’를 틀었다. 한국을 발판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 또한 비슷하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건강관리 소프트웨어 회사 눔의 정세주 대표는 최근 한국에 눔코리아를 세웠다. 동아일보DB
문지원(왼쪽), 호창성 대표가 소셜미디어 서비스 ‘빙글’의 첫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두 번의 실패, 구글의 여섯 번째 앱
정 대표는 미국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한국에 들여오려다 자금 유치에 실패해 거처를 뉴욕 맨해튼에서 슬럼가로 옮겼다. 2008년에는 구글 직원과 ‘워크스마트랩’이라는 회사를 차렸지만 1년 넘도록 변변한 서비스를 내놓지 못했다.
▼ “모바일 사업 최적지 한국서 제2도약 꿈꾼다” ▼
‘돈 안 드는’ 아이템을 구상하다 떠올린 것이 건강관리 소프트웨어였다. 2009년 위성항법장치(GPS)로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카디오 트레이너’를 선보였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여섯 번째 앱이었다.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듬해 유사 서비스가 넘쳐나자 정 대표는 2011년 사용자의 생활습관에 맞춰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앱 ‘눔 다이어트 코치’를 선보였다. 최근 내놓은 ‘눔 워크’와 함께 이 세 가지 앱은 6월 말까지 총 1800만 건이 다운로드됐다.
○ 동영상 자막계의 위키피디아
호 대표와 문 대표는 2008년 ‘비키’를 내놓았다. 웹사이트에 동영상이 올라오면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자막을 다는 ‘자막계의 위키피디아’다.
둘은 유학 준비생들이 미국 드라마의 자막을 보며 영어공부하는 것을 떠올려 비키를 만들었다. 호 대표는 스탠퍼드대 수업에서 만난 벤처투자자로부터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를 투자받았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회원수가 폭주해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였지만 투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가욋일로 돈을 벌어 서버를 증설했다. 직원도 1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돈이 다 떨어져 홈페이지에 ‘비키를 폐쇄하겠다’고 공지했더니 회원들이 “안 된다”며 5달러, 10달러씩 기부해줘 겨우 연명했다.
시장성을 입증해야 했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비키 웹사이트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루 만에 36개 언어로 자막이 붙었다. 그리고 2010년 두 번째 투자를 받고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지금까지 비키가 유치한 투자액은 2500만 달러에 이른다.
○ 한국을 발판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정 대표와 호, 문 대표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사업가적 판단에서였다. 눔은 지난해 말 눔 다이어트 코치 한국어 버전을 출시했고 5월에는 국내 법인을 세웠다. 안드로이드 시장이 강한 눔에 한국은 최고였다. “올해 초 기준으로 한국의 스마트폰 인구 중 92%는 안드로이드를 씁니다. 한국인들은 유료 앱 구매에도 적극적이에요. 한국을 놓치면 바보죠.”
정 대표는 국내 법인이 단순한 지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뉴욕은 엔지니어링 본사로, 한국은 마케팅 영업 본사로 키울 생각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달 일본과 독일에 사무실을 내고 9월엔 영국, 연말엔 중국권에 진출할 겁니다.”
비키를 안정궤도에 올리자 호, 문 대표는 지루해졌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2의 창업을 하려고 한국에 돌아왔다. 지난해 7월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빙글을, 올 3월에는 모바일 버전을 내놓았다. 호 대표는 “현재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로 서비스하고 있다”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로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눔과 빙글의 창업자들은 글로벌 스타트업이 되기 위한 조언으로 철저한 현지화를 꼽았다. 문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들끼리 골방에 처박혀 라면, 김치 먹고 개발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했다. 정 대표도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현지 인재를 영입하라”고 조언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