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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Up]두 벤처의 깜짝 유턴

입력 | 2013-08-05 03:00:00

잘나가던 건강관리 앱 ‘눔’-소셜미디어 ‘빙글’… 왜 미국서 다시 돌아왔을까




설립 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이른바 ‘본 글로벌(Born Global)’들의 열기가 뜨겁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에 앱(응용프로그램)을 등록하기만 하면 세계에서 사용자를 끌어올 수 있는 모바일 환경 덕분이다.

이 가운데 건강관리 앱 업체 ‘눔’과 소셜미디어 업체 ‘빙글’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창업을 한국에서 처음 했지만 벽에 부닥친 뒤 “큰 꿈을 이루겠다”며 모바일의 본고장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금의환향해 국내에 ‘제2의 둥지’를 틀었다. 한국을 발판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 또한 비슷하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건강관리 소프트웨어 회사 눔의 정세주 대표는 최근 한국에 눔코리아를 세웠다. 동아일보DB

○ 한국서 좌절, ‘큰 꿈’ 안고 미국행

정세주 눔 대표(33)는 홍익대 1학년 때 사업을 시작했다. 해외 음반을 수입해 팔았다. 지금의 SM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회사를 차려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음반사 관계자들은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며 그를 애송이 취급했다. 그즈음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취업하려고 ‘스펙’을 쌓는 동기들, 삼성전자에 들어가 대리, 과장 되려고 열을 올리는 선배들뿐이었다. 숨이 막혔다. “세상을 바꾸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300만 원을 들고 미국으로 떠났다.

문지원(왼쪽), 호창성 대표가 소셜미디어 서비스 ‘빙글’의 첫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빙글의 공동창업자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호창성(39) 문지원 대표(38)는 2000년 그래픽 기술을 이용한 3차원(3D) 가상세계 게임을 내놓았다. 하지만 닷컴 거품이 터지면서 투자시장도 얼어붙었다. 3년 만에 기업을 매각했다. 어렵던 시기 결혼한 둘은 남은 빚 5000만 원을 모두 갚은 뒤 미국 하버드대(문 대표)와 스탠퍼드대(호 대표)로 각각 유학을 떠났다. 문 대표는 “우리보다 기술력이 처지는 서비스도 미국에서 꾸준히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보고 미국에서 창업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 두 번의 실패, 구글의 여섯 번째 앱

정 대표는 미국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한국에 들여오려다 자금 유치에 실패해 거처를 뉴욕 맨해튼에서 슬럼가로 옮겼다. 2008년에는 구글 직원과 ‘워크스마트랩’이라는 회사를 차렸지만 1년 넘도록 변변한 서비스를 내놓지 못했다.

▼ “모바일 사업 최적지 한국서 제2도약 꿈꾼다” ▼

두 번의 실패 끝에 통장에 남은 돈은 4000달러뿐이었다.

‘돈 안 드는’ 아이템을 구상하다 떠올린 것이 건강관리 소프트웨어였다. 2009년 위성항법장치(GPS)로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카디오 트레이너’를 선보였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여섯 번째 앱이었다.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듬해 유사 서비스가 넘쳐나자 정 대표는 2011년 사용자의 생활습관에 맞춰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앱 ‘눔 다이어트 코치’를 선보였다. 최근 내놓은 ‘눔 워크’와 함께 이 세 가지 앱은 6월 말까지 총 1800만 건이 다운로드됐다.

○ 동영상 자막계의 위키피디아

호 대표와 문 대표는 2008년 ‘비키’를 내놓았다. 웹사이트에 동영상이 올라오면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자막을 다는 ‘자막계의 위키피디아’다.

“당시 한국에선 ‘한류’에 대해 자화자찬했지만 막상 미국에는 죄다 할리우드 콘텐츠뿐이었어요.”(문 대표)

둘은 유학 준비생들이 미국 드라마의 자막을 보며 영어공부하는 것을 떠올려 비키를 만들었다. 호 대표는 스탠퍼드대 수업에서 만난 벤처투자자로부터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를 투자받았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회원수가 폭주해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였지만 투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가욋일로 돈을 벌어 서버를 증설했다. 직원도 1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돈이 다 떨어져 홈페이지에 ‘비키를 폐쇄하겠다’고 공지했더니 회원들이 “안 된다”며 5달러, 10달러씩 기부해줘 겨우 연명했다.

시장성을 입증해야 했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비키 웹사이트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루 만에 36개 언어로 자막이 붙었다. 그리고 2010년 두 번째 투자를 받고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지금까지 비키가 유치한 투자액은 2500만 달러에 이른다.

○ 한국을 발판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정 대표와 호, 문 대표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사업가적 판단에서였다. 눔은 지난해 말 눔 다이어트 코치 한국어 버전을 출시했고 5월에는 국내 법인을 세웠다. 안드로이드 시장이 강한 눔에 한국은 최고였다. “올해 초 기준으로 한국의 스마트폰 인구 중 92%는 안드로이드를 씁니다. 한국인들은 유료 앱 구매에도 적극적이에요. 한국을 놓치면 바보죠.”

정 대표는 국내 법인이 단순한 지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뉴욕은 엔지니어링 본사로, 한국은 마케팅 영업 본사로 키울 생각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달 일본과 독일에 사무실을 내고 9월엔 영국, 연말엔 중국권에 진출할 겁니다.”

비키를 안정궤도에 올리자 호, 문 대표는 지루해졌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2의 창업을 하려고 한국에 돌아왔다. 지난해 7월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빙글을, 올 3월에는 모바일 버전을 내놓았다. 호 대표는 “현재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로 서비스하고 있다”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로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눔과 빙글의 창업자들은 글로벌 스타트업이 되기 위한 조언으로 철저한 현지화를 꼽았다. 문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들끼리 골방에 처박혀 라면, 김치 먹고 개발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했다. 정 대표도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현지 인재를 영입하라”고 조언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