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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종합화학 RM팀 “국제유가 널뛰어도 대처못할 위기는 없다”

입력 | 2013-08-05 03:00:00

■ 파생상품 투자로 위험분산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종합화학 본사에서 이진희 RM팀장(가운데)과 팀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12월 말 SK종합화학 리스크매니지먼트(RM)팀의 한동훈 대리(31)는 글로벌 석유화학 전문 매체에서 긴급 속보를 입수했다. 대만 최대 석유화학업체인 포모가 사고로 생산라인 가동을 다시 중단했다는 내용이었다. 포모의 공장이 멈춘 것은 그해 벌써 6번째였지만 글로벌 시장에 주는 충격파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한 대리는 급히 이진희 RM팀장(40)과 상의한 뒤 영업부서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원료(나프타) 가격이 얼마나 내려가고, 석유화학 제품 값은 얼마나 오를 것인지, 또 SK종합화학의 어떤 부문에서 이익과 손실이 날지를 분석했다. 그날 밤 RM팀이 만든 A4용지 한 장짜리 보고서가 경영관리, 구매, 영업 등 사내 관련 부서에 전달됐다.

이 팀장은 “우리 팀의 1차적인 역할은 원료나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더해 시장에서 돌발 상황이 생겨도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파생상품을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 리스크 관리가 핵심 경쟁력


유가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글로벌 리스크 대처 능력이 석유화학업체들의 핵심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SK종합화학 RM팀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각 사업 부문의 위험요소를 찾아내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구매 및 영업부서도 원료 구매 때 장기계약을 하는 등 실물(제품)을 통한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실물 거래만으로는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 RM팀이 ‘헤지(위험 회피 또는 분산)’ 용도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차화엽 SK종합화학 사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RM팀의 성과에 대해 “가장 창의적인 경영사례”라고 극찬했다.

SK종합화학의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는 좋은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SK종합화학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5조6425억 원, 7501억 원이었다. 글로벌 경기 악화 속에 전년보다 영업이익은 2.7% 줄었지만 영업이익률은 4.8%로 0.6%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해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국내 경쟁업체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2∼98% 감소했다. SK종합화학은 올해 상반기(1∼6월)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0% 증가한 4672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 팀장은 “회사 실적 개선이 모두 리스크 관리 덕분이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경기 변동성이 심하고 다양한 글로벌 변수가 수시로 생길 때는 리스크 관리가 안정적 수익을 내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 금융 전문가들이 모였다


SK종합화학 RM팀에는 팀장을 포함해 8명이 근무하고 있다. 2006년 처음 RM팀이 생겼을 때는 4명이 트레이딩사업 부문의 리스크 관리를 했다. 2008년부터 트레이딩은 물론이고 원료 구매, 제품 판매 등 전 사업 부문의 리스크 관리로 역할이 확대됐다. 그러면서 인원도 늘어났다. 구성원들은 경영학석사(MBA) 출신이거나 회계사, 외환관리사, 파생상품 투자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가진 금융 전문가들이다.

원유, 광물, 철강, 곡물 등에 대한 파생상품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석유화학업계에는 여전히 파생상품을 활용한 헤지가 일반화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SK종합화학 RM팀은 새로운 ‘헤지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신지호 과장(39)은 “헤지는 회사 이익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일종의 보험에 드는 것”이라며 “제품 가격이 급락할 것에 대비해 제품 가격이 내리면 이익을 내는 파생상품에 미리 투자해 두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RM팀은 시황 전문 예측기관의 방대한 시장 데이터와 통계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예측모델을 만든다. 시장 상황이 갈수록 복잡해져 ‘똘똘한’ 모델 하나를 만드는 데 최소 2개월 이상 걸린다.

헤지를 하면 돌발 상황으로 생기는 수익 악화를 만회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시장 변화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내에서 “헤지를 안 했으면 지금 같은 시황에서 큰돈을 벌었을 것”이란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 팀장은 “헤지의 목적은 큰 이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경영계획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거래액이 늘어나고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도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홍정수 인턴기자 고려대 통계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