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생산직 주부사원’ 신참 6인의 광양제철소 훈련 현장
포스코의 주부사원 채용 프로그램에 합격한 교육생들이 지난달 24일 광양제철소 부둣가에서 진순규 제품출하과 파트장(가운데)에게 교육을 받고 있다. 포스코 제공
지난달 24일 전남 광양시 금호동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만난 송은하 씨(38·광양시 중마동)는 광활한 제철소 부두에 솟은 22m 높이의 선적 크레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송 씨는 5월 포스코의 경력 주부사원 생산직 직업훈련생으로 선발돼 지난달 8일부터 13주 일정으로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 교육을 수료하면 10월 제품출하과에 배치돼 각종 제품을 배에 싣고 나르는 크레인을 조종하게 된다.
광양에서 포스코는 ‘꿈의 직장’이다. 송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입사지원서를 냈다가 합격했다. 합격 통보를 받는 순간 송 씨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옆에 있던 돌도 안 지난 막둥이가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 광양제철소의 ‘철(鐵)의 엄마’들
포스코는 2007년부터 매년 기혼여성을 채용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도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14명의 주부사원이 합격했다. 이 중 광양제철소로 배치받아 교육 중인 주부사원 6명을 만났다. 앞치마와 고무장갑 대신 그들은 푸른색 작업복과 헬멧을 택했다. 찌는 듯한 제철소의 한여름 무더위도, 힘든 실무 훈련도 스스로 원한 것이기에 견딜 만했다.
세 아이의 엄마 최은희 씨(32·인천 강화군)는 합격 후 가족을 남겨둔 채 혼자 광양에 내려왔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디자인 회사에서 명함과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한동안 일을 쉬었다. 지금은 아이들을 잠시 친정에 맡겼는데 정식 입사하면 광양에 데려올 계획이다. 최 씨는 철강 제품 품질을 검사하는 박판검사과에서 일하게 된다. 최 씨의 다음 목표는 ‘학사모’. 업무와 관련된 학과가 있는 대학에 도전할 계획이다.
‘농부의 딸’ 차공아 씨(36)는 돈을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폐교 직전의 중학교에서 계약직 행정업무를 하던 박영희 씨(34)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각각 포스코의 문을 두드렸다. 쌍둥이 엄마 김수정 씨(32), 사업이 어려워진 신수정 씨(39)도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헬멧을 썼다. 이들은 힘든 교육이 끝나고 나면 생활관에 모여 수다 꽃을 피우며 하루를 마친다. 수다의 결론은 늘 하나다. “끝까지 이겨내자. 우린 ‘철(鐵)의 엄마’들이니까.”
“쇠 만드는 일이 사실 여자가 하기 쉬운 일은 아니죠.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주부들이 이 일을 하겠다고 덤벼든 건 나름대로 의지가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주부사원의 교육을 맡고 있는 오근일 기술교육그룹 팀장의 말이다.
제품출하과의 진순규 파트장도 주부사원 배치를 앞두고 “우리 부서가 생긴 이래 기술직 여사원이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라며 “새 직원을 맞이하기 위해 여자 화장실도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대 반, 우려 반처럼 들렸다. 하지만 포스코 내 다른 부서의 사례를 종합하면 주부사원에 대해 처음에는 우려가 컸지만 지금은 기대가 훨씬 높아졌다. 40여 명의 주부사원이 재취업 프로그램으로 입사했는데 이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4조 2교대제로 한 사람이 4일(주·야간 각 2일씩)을 일하고 4일은 쉰다. 주간 근무 2일을 제외하면 6일은 가사와 병행할 수 있는 셈이다.
포스코 측은 “사내 문화를 부드럽게 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커 앞으로 주부사원 채용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양=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