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극우 정치인들 머릿속엔 식민지배 의식 남아 있어”
니시노 루미코 공동대표가 6월 일본 도쿄 모처의 ‘센터’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독일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며 “우경화로 위협이나 어려움은 커졌지만 ‘일본의 진정한 민주화’라는 목표를 향해 더 힘차게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고노 담화를 발표한 지 20년이나 됐다. 그런데도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그들의 뇌리에 식민지배 의식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발언이 계속되는 것은 (이웃 국가에 대한 무례일 뿐 아니라) 일본이란 나라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전쟁과 여성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VAWW RAC)’의 니시노 루미코(西野瑠美子·61) 공동대표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다. 한일 사이에 위안부 문제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199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째 천착하고 있다. 그는 미얀마와 중국 국경지대에서 미군이 촬영한 이른바 ‘임신한 위안부’ 사진의 당사자가 북한에 거주하는 박영심 씨(2006년 별세)라는 사실을 2000년에 처음 발굴해 공개했다. 이는 강제 동원된 위안부 피해자의 사진과 문서 자료, 증언이 모두 일치한 첫 사례였다.
먼저 그는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는 ‘체험 증거’뿐 아니라 ‘문서 증거’도 있어 논란이 끝난 사안인데 정치인들이 새삼스레 입에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체험 증거’란 피해자의 증언을 말한다. 문서 증거로는 고노 담화를 이끌어 낸 것으로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中央)대 교수가 1992년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굴한 자료 외에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 동원했다고 적시한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군사법원 판결문 등이 있다.
그는 “정치인의 (위안부 강제 동원 부정) 발언은 근본적으로 식민 지배기의 생각이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일본 대중은 이런 우익 정치인의 선동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우익 단체가 내뱉던 구호들이 신오쿠보(新大久保) 거리의 반한 시위처럼 인터넷을 통해 모인 일반 대중의 입에서도 나오고 있어 걱정이다.”
위안부에 대한 왜곡된 자료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도 큰 현안이라고 니시노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위안부’를 검색하면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식의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 올해 1월부터 요시미 교수와 함께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담은 ‘정의를 위한 싸움(Fight for Justice)’ 사이트를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http://fightforjustice.info/)는 고노 담화 20주년을 앞두고 최근 개설됐다.
테러에 대한 걱정은 늘 있었지만 아베 정권 이후에는 특히 커졌다. 최근 위안부 관련 사진전에 참여하면서 그는 자원봉사자 10여 명으로 구성된 경호팀의 보호를 받기도 했다.
니시노 대표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1년 한국 시민단체의 주선으로 일본을 찾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나서부터다. 그는 박영심 할머니의 생애를 정리해 2003년 ‘전쟁터 위안부―라멍 전멸전에서 살아남은 박영심의 궤적’을 출간한 것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를 쫓아서’ ‘위안부와 15년 전쟁’ 등 다수의 위안부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기존에 있던 ‘전쟁과 여성 상대 폭력에 반대하는 일본네트워크(VAWW-NET)’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2011년 9월 새롭게 만들었다. 비폭력, 평화,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여성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 실현을 목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 전망에 대해 “우경화로 어려움이 있지만 그만큼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력이 커지고 있는 점은 희망적”이라며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평화와 인권을 위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