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4>대형사고 부르는 빗길 과속운전
빗길에서는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 수막이 형성돼 운전자의 핸들 다루는 능력, 제동 능력이 떨어지고 시야도 크게 줄어든다. 특히 비 오는 날에는 커브길을 운전할 때가 훨씬 위험하다. 직진 주행 때는 타이어의 홈 사이의 물이 쉽게 빠져나가지만 커브길 주행 때는 이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수막현상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010∼2012년 3년간 전국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빗길 사망사고 135건을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발생 지점이 굽은 도로인 곳에서 발생한 사고가 68건(50.4%)으로 가장 많았다. 곧은 도로(55건)와 진출입로(10건)가 뒤를 이었다.
2011년 9월 남해고속도로 진성 나들목(경남 진주시) 인근 굽은 도로에서는 빗속을 달리던 A 씨(53)의 승합차가 1차로에 정차해 있는 승용차를 피하려다 빗길에 미끄러져 다른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곳에서 300m가량 떨어진 중촌교 인근에서는 2010년 2월 빗길에서 차로를 변경하던 1.5t 화물차가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량 6대과 연쇄 추돌해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
남해고속도로 군북 나들목∼진주 나들목 구간은 월아산과 방어산 사이로 길을 낸 탓에 굽은 도로가 많고 경사가 가파르다. 편도 2차로를 3, 4차로로 확장한 뒤 교통량이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확장 공사가 완료된 2011년 12월 이후 1년간 발생한 빗길 사고는 10건이었다.
고속도로 진출입로인 중앙고속도로 양산 분기점∼물금 나들목 4km 구간도 3년간 사망사고 2건, 일반사고 6건이 발생해 특히 위험한 구간으로 나타났다. 고속도로 진출입 구간은 차로 변경이 잦고 급커브 구간이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로교통법에서는 비로 인해 노면이 젖었을 때 제한속도를 20% 감속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폭우가 거세 시야가 100m 이내로 좁아질 때는 50%까지 감속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자가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
취재팀은 한국도로공사에 의뢰해 고속도로 5개 구간에서 7월 한 달간(1∼28일) 비가 온 날과 그렇지 않은 날 1시간 동안 지나간 차량의 평균속도를 분석했다. 해당 구간은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양지 나들목∼용인 나들목 △영동선 인천 방향 마성 나들목∼신갈 분기점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북천안 나들목∼천안 나들목 △서해안고속도로 서울 방향 당진 나들목∼송악 나들목 △서해안선 목포 방향 발안 나들목∼서평택 분기점으로 인근에 기상관측 장비가 있는 곳들이다. 시간대는 교통 흐름이 원활한 오전 5∼6시.
분석결과 비가 내린 7∼9일 동안 다섯 구간의 평균 속도는 시속 95.4km로 비가 오지 않은 날(시속 104.8km)에 비해 약 9% 감속하는 데 그쳤다.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인 영동선과 경부선 구간에서는 젖은 노면일 때 시속 80km로 감속해야 하지만 비 오는 날 세 구간의 평균 속도는 시속 94.5km로 규정보다 시속 14.5km 높았다. 제한속도 시속 110km인 서해안선 2구간 역시 평균속도가 시속 96.9km로 규정인 시속 88km보다 시속 8.9km 더 높았다.
전체적인 운전 컨트롤 능력이 떨어지는 빗길 운전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08∼2012년 발생한 빗길 교통사고는 맑은 날 사고보다 치사율이 1.3배 더 높았다. 특히 빗길 커브 구간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빗길 직선 구간 사고에 비해 2.9배 높았다.
주애진·조건희 기자 jaj@donga.com
박형윤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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