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일본 측 축구 단체와 스포츠 애호가들이 반발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논평하고 한국 정부가 반박해 민간의 한일 마찰이 정부 차원으로 확대됐다.
욱일승천기 논쟁도 일어났다. 한국 언론에 따르면 욱일승천기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 모양)를 상기시킨다고 하지만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욱일승천기가 군기와 군함기에 사용됐던 역사는 있지만 요즘 일본인에게 있어 욱일승천기는 아사히신문의 회사 깃발과 같이 ‘정기(精氣) 넘치는 아침의 태양’에 지나지 않는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이번과 같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양국 경기가 열렸을 때는 ‘함께 프랑스로 가자’는 영어 현수막이 걸렸다. 당시 한국은 이미 대회 진출을 확정 지은 때라 일본인들은 감격했었다. 양국 간의 그런 ‘선순환’이 사라졌다.
최근 한국 지인들과 만나면 “한일 관계는 어디까지 악화될 것인가”라는 걱정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곤혹감이 화제다. 사태가 심각할 뿐 아니라 상당히 구조적이다. 정치 지도자 사이의 논쟁이 민간에 파급되고 민간의 마찰이 정부 간 논쟁으로 확대되는 ‘악순환 메커니즘’이 됐다.
되돌아보면 발단은 정치 지도자 간의 ‘신뢰 붕괴’였다. 그것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이명박 정상회담에서의 위안부 논쟁, 이 대통령의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상륙 등 전 정권 시대에 시작한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시켜 주면 좋겠지만 둘은 정상회담조차 하지 못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아베 총리의 ‘침략의 정의’ 발언 등이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에 상처를 낸 것 같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 정치 지도자가 도덕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를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부도덕한 상대와 영원히 회담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 사이 한일 관계는 계속 악화해 겨우 탄생시킨 시민사회의 교류까지 파괴돼 버릴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아베 정권의 핵심 인물과 열렬한 지지자들은 국가주의적인 색채가 짙은 사람들이 많다. 서로 논쟁해 역사관을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담을 위한 회담’이어도 좋으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이용해 먼저 한일 관계 악화에 브레이크를 걸었으면 한다.
다행히 7월 브루나이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이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한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협력하자”고 말하고 윤병세 외교장관도 찬성했다고 한다.
심각해지는 한일 마찰도 바닥을 치면 좋아지는 일만 남았다. 2015년에 ‘신뢰 가능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공통 목표’로 정하고 거기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그 정도도 못할 만큼 한일은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