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파리 특파원
지난달 말 프랑스 서부 숄레 시의 질 부르둘렉스 시장은 이렇게 중얼거렸다가 신세를 망칠 위기에 몰렸다. 100여 대의 캠핑카를 불법 주차해 놓은 동유럽 출신 집시들과의 언쟁 속에서 무심코 한 말이 현장에서 녹음됐고 지역신문에 실려 일파만파를 낳았다. 그는 나치의 ‘반인륜 범죄 찬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유죄가 확정되면 5년 이하 징역형에 벌금 4만5000유로(약 6680만 원)를 물게 된다. 그는 소속 정당에서도 쫓겨났다.
이번엔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던졌다.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일본의 우익 세력이 민주적인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누구도 모르게 무력화시켰던 ‘나치식 개헌’ 수법을 배우자는 제안이었다. 나치의 개헌은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600만 명 대학살의 참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유럽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소 부총리는 ‘은밀하고 위대하게’ 개헌을 해보자는 취지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속내를 널리 알린 셈이 됐다.
그 이유에 대해 전직 외교관 출신인 프랑스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프랑스 영국 등도 식민 지배를 하며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패전한 독일만 사과를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같은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아픈 곳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유럽 언론들이 아소 부총리의 ‘나치 발언’에 대해서는 태도가 싹 달라졌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아소 부총리의 망언 시리즈에는 늘 ‘나치즘’이 빠지지 않는다”고 꼬집었고,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마치 나치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개헌한 것처럼 발언했는데 실제 나치는 여러 특별법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유럽 언론들의 아소 비판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동안 일본의 정치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동아시아 침략에 관한 숱한 망언을 쏟아냈지만 ‘나치 망언’만큼 조명을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중국 등의 항의는 무시하면서 유럽의 비판에는 잽싸게 발언을 철회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서구 사대주의’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이번에 아소 부총리의 망언에 가장 무거운 비판을 가한 것은 유대인 인권단체인 사이먼 비젠탈 센터였다. 이 센터를 세운 사이먼 비젠탈(1908∼2005)은 50년간 1100명이 넘는 나치 전범을 찾아내 기소해 ‘최후의 나치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총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잡아내기도 했다. 이 센터는 최근 독일에서 나치 전범 현상수배 작전을 또다시 시작했다.
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