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산업부 차장
까다로운 사람들은 ‘MOU를 체결했다’는 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했다는 수준이므로 조약과 계약을 의미하는 체결이라는 표현 대신 ‘A사와 B사가 이런저런 내용의 MOU를 교환했다’는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MOU는 구속력이 낮다. 어기면 페널티가 있는 계약과는 다르다. 맺어놓고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얘기다. 기업들은 MOU를 맺은 뒤 계약 조건을 논의하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고 만다.
미래부에선 “MOU를 맺었으니 부처 간 협력이 잘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대한민국의 정부부처들은 한 회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생각엔 “부처끼리 얼마나 협업이 안 되면 MOU까지 맺었겠느냐”는 생각에 못 미더워진다.
대통령을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생각하면 미래부 장관은 최고기술책임자(CTO), 안전행정부 장관은 경영지원본부장쯤 된다. CEO 앞에서 “우리 서로 협력을 잘하기로 MOU를 맺었다”고 보고할 ‘간 큰’ 임원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같은 공무원이라도 부처가 다르면 민간 기업의 삼성 직원과 현대차 직원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행정고시를 패스한 뒤 한 부처에 몸담으면 대개 그 조직에 뼈를 묻는 한국식 관료 조직의 문화가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각 부처는 정부조직 개편 때마다 가장 일 잘하는 직원에게 업무 조정 업무를 맡긴다. 기업으로 치면 신규 사업개발팀에 엘리트를 배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대 정부부처 중 가장 많은 MOU를 맺을 기세인 미래부는 이런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 출범과정에서 부처 이기주의로 소프트웨어 정책과 콘텐츠 정책, 정보보호 정책 등이 여러 부처로 나뉘었다. 자기 완결형 정책권한을 갖지 못한 미래부가 고육책으로 MOU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김용석 산업부 차장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