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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만 지켜봐” 압박감에 무너진 박인비

입력 | 2013-08-06 03:00:00


5일 새벽 막을 내린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최종 합계 8언더파 280타로 우승한 스테이시 루이스(28·미국)는 우승을 확정지은 뒤 “박인비도 역시 사람이더라”고 말했다. 세계 랭킹 2위인 루이스는 불과 며칠 전 박인비에 대해 “같은 선수로서 박인비가 과연 사람인지 궁금하다. 우리와는 달리 박인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었다.

‘캘린더 그랜드슬램’에 도전했던 ‘골프 여제’ 박인비(25·KB금융그룹)는 이번 대회에서 6오버파로 공동 42위에 머물렀다. 시즌 개막 뒤 3연속 메이저대회를 우승한 골퍼는 남녀를 통틀어 박인비 말고는 없었다. 그렇지만 루이스의 말대로 박인비도 사람이었다. 브리티시여자오픈 마지막 라운드를 마친 뒤 박인비는 공식 인터뷰에서 “대회가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18번홀을 걸어 나오면서 안도감까지 들었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네 라운드를 돌았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지난달 1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그는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그랜드슬램’에 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잘 치건 못 치건 공식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4연속 메이저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것도, 모든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생소했다. 심지어는 6오버파를 쳤는데도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지 않나. 이번 대회는 내겐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라고 했다.

잘 치려고 할수록 더욱 마음같이 되지 않는 게 골프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그는 더욱 큰 압박감에 시달렸고 장기이던 퍼팅까지 급격히 흔들렸다. 박인비는 마지막 4라운드에서 40개의 퍼팅을 기록했다. 그는 “3퍼팅은 물론이고 모처럼 4퍼팅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박인비는 “6일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2, 3일을 보내고 싶다. 다시 에너지를 회복한 뒤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그랜드슬램을 위한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 올해부터 메이저대회로 승격한 에비앙 마스터스(9월 12∼15일)다.

마이클 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커미셔너는 대회 전 “한 시즌에 4개의 메이저대회를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이다. 만약 박인비가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이어 에비앙까지 우승하면 ‘슈퍼 슬램’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에비앙 마스터스에서의 그랜드슬램 도전에 대해 박인비는 “훨씬 부담이 적을 것 같다. 이미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일을 겪었기에 앞으로는 어떤 일이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한때 선두로 나섰던 최나연(26·SK텔레콤)과 박희영(26·하나금융그룹)은 루이스에 2타 뒤진 공동 2위에 만족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