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맞은 대학생 상대로 ‘빗나간 영업’ 기승
조 씨처럼 소득이 없는 대학생이 편법으로 돈을 빌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상당수 저축은행이 대출 조건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돈을 갚지 않으면 부모에게 받아내면 된다는 식이다. 돈을 쓰고 싶은 곳은 많은데 주머니는 가벼운 대학생들은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손쉬운 대출은 다단계 사기 등에 악용되기도 한다.
금융당국은 등록금과 학원비 등 학비와 최소 생활자금에 한해 저축은행이 대학생에게 빌려주도록 허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무조건 대출을 막으면 대부업체나 사채 등 더 높은 이자의 빚을 질 수도 있어서 철저한 감독하에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보 기자가 직접 대학생 대출 상담을 받았더니 대출을 해주겠다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H저축은행 상담사는 “어떤 용도로 쓰든 상관없지만 학원비라고 말해야 대출이 가능하다”고 요령을 알려줬다.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 절대 확인하지 않는다”며 안심시켰다.
최건호 금감원 저축은행감독국장은 “저축은행이 학비나 생활비 용도가 아닌 걸 알고도 빌려줬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비나 생활비가 아니면 대출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저축은행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곳 중에서도 등록금 고지서나 학원비 영수증 등 용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하는 곳은 없었다.
소득이 없어도 대출을 해주는 것도 문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별도의 증빙 서류를 요구하지 않았다. 일부는 소득이 없다고 말해도 대출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저축은행들이 대학생의 소득 수준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나중에 부모에게 받아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에는 “왜 저축은행에서 제대로 심사도 하지 않고 우리 아이에게 대출을 해줬느냐”는 부모들의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 온갖 편법 난무…사기에도 악용
대학생에 대한 무분별한 대출은 주로 대출중개업체에 소속된 상담사들을 통해 이뤄진다. 저축은행 본점에서 불가능하다고 한 대출도 상담사들은 가능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담사 최모 씨는 “저축은행에서 편법으로 대출해준다고 대놓고 인정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중개업체를 통하면 저축은행에서도 당연히 승인해준다”며 “다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계약을 맺은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하면 다른 저축은행을 연결시켜 주겠다는 상담사들도 꽤 있었다. 현재 ‘대출모집인 제도 모범 규준’에 다르면 대출중개업체는 저축은행 한 곳의 대출 상품만 취급해야 한다.
대학생에 대한 편법 대출 관행은 각종 사기에 악용될 소지를 만들고 있다. 여대생 김모 씨는 지난해 다단계 회사에 들어갔다가 저축은행 두 곳에서 하루 만에 15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김 씨는 다단계 회사가 ‘이렇게만 말하면 된다’고 알려준 대로 대출중개업체 상담사를 거쳐 대출을 받았다. 대출은 일사천리였다. 저축은행 한 곳에서는 김 씨가 이미 다른 곳에서 800만 원을 대출받은 걸 알고도 700만 원을 또 빌려줬다. 김 씨는 다단계 회사를 나왔지만 2000만 원 가까운 빚이 남았다.
성연우 인턴기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이지은 인턴기자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