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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슈퍼甲 상대로 “추가비용 달라” 소송

입력 | 2013-08-06 03:00:00

장기불황에 벼랑 끝 몰린 건설사들
“공사연장 따른 손실 감당 안돼, 예전엔 꿈도 못꿨지만 이렇게라도…”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선 관련 등 지자체-공공기관 대상 ‘乙의 반란’




최근 호남지역의 고속국도를 준공한 한 대형 건설사는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공사기간이 당초 계획보다 수십 개월 길어지면서 현장 관리비, 인건비 등으로 약 4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건설사가 이런 식으로 받지 못한 돈은 40개 현장에서 650억 원이나 된다. 회사 관계자는 “소송을 검토하는 현장이 줄줄이 있다”며 “예전 같으면 ‘슈퍼 갑(甲)’인 발주처를 상대로 소송하는 건 꿈도 못 꿨지만 이젠 이렇게라도 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의 장기불황이 계속되면서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을(乙)의 반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공사 발주처를 대상으로 법적 소송에 나서는 건설사가 늘어나고 있는 것. 그동안 발주처가 일방적으로 공사기간을 연장해도 건설사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제 수익 나올 곳이 없어진 건설사들이 이 돈을 제대로 달라며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다.

현재 가장 관심이 높은 소송은 이달 23일 1심 판결을 앞둔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선 관련 소송이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12개 건설사는 지난해 서울시, 부천시, 조달청을 상대로 공사가 21개월이나 길어지면서 발생한 간접비 146억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지난달 19일 열린 최종변론 당시 법정은 건설사, 발주처 관계자 60여 명으로 가득 찼다. 관련 소송의 첫 판결을 앞두고 열기가 높았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가 승소하면 우리도 비슷한 소송에 바로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준공이 4년 이상 늦어진 굴포천 방수로 공사에 참여한 건설사 7곳도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추가 비용 132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동해남부선 부산∼울산 복선전철, 오리∼수원 복선전철 6공구, 중앙선 복선전철 8공구 등을 시공한 건설사들도 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수십억∼수백억 원대 소송을 낸 상태다. 이영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0개 현장 중 2, 3곳이 이런 소송의 불씨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계약법 시행령에는 발주처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면 발주처가 추가 비용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하위 지침에 해당하는 기획재정부 ‘총사업비 관리지침’에 관련 조항이 없어 발주처는 비용 지급을 회피했고 건설사가 손실을 충당해왔다.

건설사들은 이런 손실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적공사비 제도가 도입되고 최저가 낙찰제가 시행되면서 마진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공공공사 물량 자체도 줄고 있다. 한창환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안 그래도 건설사들이 수익을 내기 힘든데, 공공공사는 원가조차 보전하기 힘들다”며 “슈퍼 갑인 발주처는 변하지 않으니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현장이 많아 소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진행된 821개 공공공사 현장에서 발주처 잘못으로 공사가 지연된 곳은 30.9%(254개)였고, 이 중 48.8%가 발주처 예산 부족이 원인이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