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경제부 기자
정부와 새누리당이 5일 개최한 2013년 세법개정안 관련 당정협의 때 나온 말들이다. ‘적정화, 정상화, 합리화, 형평성’ 등은 세법 개정 때마다 나오는 용어들이다.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세금을 올리겠다는 건지, 내리겠다는 건지 알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가 이런 모호한 표현을 쓰면 거의 세금을 올리려는 의도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세제를 적정화하겠다”는 말은 ‘지금 이 항목에서 세금을 덜 걷고 있으니 앞으로 더 징수하겠다’는 말이다. 세금을 깎아주려 한다면 ‘세금 인하’ 같은 분명한 표현을 쓰지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초기 반감이 없도록 해야 조세저항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들이 세금정책을 불신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면적인 조세개혁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 당시 재정경제부 세제실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세금을 내는 대상은 늘리되 세율은 낮게 유지한다는 뜻인데, 국민으로선 내가 내는 세금이 어떻게 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2006년 2월, 동아일보가 ‘학원비에도 부가세를 매기는 조세개혁방안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조세저항은 극으로 치달았다. ‘넓은 세원’이라는 표현이 ‘내가 내는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임이 분명해지면서 국민 반발이 거세진 것이다.
이와 달리 세금을 더 물리는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결과 다소 진통을 겪었어도 법제화에 성공한 사례는 많다. 독신가구에 부여해 온 소수자 추가공제 혜택이나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는 개편이 그런 예다. 출산을 장려해야 하거나 가계부채를 줄여야 하는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세제여서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국민들이 대체로 공감했다.
조세저항은 실정(失政)을 지적하는 시민운동이다. 돈이 아까워 세금을 안 내려는 게 아니다. 이집트인들이 정부 억압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전철요금을 내지 않거나 재정위기를 초래한 유럽 국가 국민들이 세금 인상에 집단 반발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애매한 수사로 헷갈리게 하면 조세저항은 더 심해진다.
홍수용 경제부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