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오늘의 반복·延長 아니다한국 정부의 예측력은 몇 점쯤일까국가위험 경고신호 잘 작동하나미래는 예측 넘어 실현해야 할 세계무기력한 경제 반전시킬 힘 모으고민주 통일 앞당길 主導力 보여야
배인준 주필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늘 수많은 전망을 내놓지만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 사건은 ‘이미 터진 뒤에야’ 알기 일쑤였다. 옛 소련의 해체나 독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 같은 지구적 사건도 내로라하는 세계 전문가들, 그리고 주요국 당국자들의 예측 밖에서 일어났다. 미래는 불청객처럼 온다더니, 딱 그러했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 정부는 이듬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로 할 거냐, 2%대로 할 거냐를 놓고 국제통화기금(IMF)과 며칠 승강이를 했지만 실제 성장률은 ―6%대였다. 한국 정부도, IMF 전문가들도 1년 뒤 성장률을 9%포인트나 틀리게 예측한 것이다.
자연에서는 오늘의 태양이 곧 내일의 태양이지만 인간사에서 내일은 오늘의 단순한 반복이나 연장(延長)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늘의 관점으로 내일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케인스학파 창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부분의 사람은 미래가 현재와 다를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한다”고 했다. 이런 개인·기업·국가는 변화 대응이 어렵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에서 밀려날 위험이 커진다. 변화와 변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어제의 잣대로 내일을 재단(裁斷)하는 국가와 국민은 기회를 놓치고 위기의 지뢰밭에 던져지기 쉬운 것이다.
한국의 미래 예측력은 총체적으로 어느 수준일까. 미 NIC 보고서에 나오는 말을 빌려 정부에 묻고 싶다. ‘거대한 시대적 조류와 발생 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점검하고 핵심 변화요인들을 분석해’ ‘전략적 사고로’ 국정(國政)을 펼치고 있는가. 엄청난 국민 세금을 쓰는 국가정보원과 국책연구기관들은 ‘대한민국의 위험과 기회’를 예리하게 파악하고 ‘가야 할 미래의 길’을 제때 올바로 제시하고 있는가. 닥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고 회피 방안을 강구토록 하는 것은 미래 예측의 중요한 목적이다.
미래는 예측의 대상인 동시에 실현의 영역이다. 16년 전의 외환위기는 대외변수의 작용이 컸지만 우리가 경제운용과 시장작동에서 저지른 많은 실패와 실수가 위기에 뚫리는 상황을 자초했다. 지금의 성장 둔화도 대외변수와 무관하지 않지만 경쟁국들에 더욱 밀리는 저성장은 국내 정치, 정부, 기업, 노조, 사회심리, 국민의식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재정은 악화되고 세수는 줄어들며 근로의식은 퇴조하고 국민 욕구는 하늘을 찌른다. 공공부문의 광범위하고 뿌리 깊은 모럴 해저드는 알면 알수록 기가 막힌다. 우리 스스로 이런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현재는 모든 과거의 필연적 산물이고 모든 미래의 필연적 원인’이라는 말이 대체로 맞지 않겠는가. 우연 또는 우발도 인간이 감지하지 못했을 뿐, 어떤 필연일지 모른다. 우리가 과거에 무엇을 했고 현재 무엇을 하느냐가 미래를 가를 것이다.
자유민주 체제로의 통일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현해야 할 미래이다. 국토 10만 km²에 인구 5000만의 중간국가에서 국토 22만 km², 인구 8000만의 자유민주 대국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반드시 이뤄내야 할 우리의 미래이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다. 통일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앞당기지 못하면 북한의 세습독재정권이 망한다 해도 북한은 중국화(化)하고 한국은 ‘섬 아닌 섬’으로 고착될 수 있다. 역사의 감은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다. 감나무부터 우리 스스로 심어야 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