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민원 줄여라’ 연일 압박에 ‘시범케이스 걸릴라’ 속으로만 끙끙
B보험은 소비자 달래기에 진땀을 빼고 있다. 고객이 민원을 내기 전에 해당 업무의 부서장이 고객에게 달려가 사전 진화에 나서기도 한다. 서면으로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고 통보하던 과거에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보험사는 물론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이 ‘민원 쓰나미’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금감원이 민원을 덜 줄인 회사에 책임을 묻겠다며 채찍질을 하고 나선 가운데, 수익성은 떨어지고 악성 소비자(블랙컨슈머)는 늘어나는 3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3월 취임과 함께 ‘민원점검의 날’을 정해 매달 모든 임원이 민원상담에 응하도록 지시했다. 최근에는 월초에 나오는 민원통계를 꼼꼼히 챙기고 있다.
금감원이 업무의 최우선 순위로 민원감축을 내세우자 금융권 전체가 민원 이슈에 매달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민원이 매년 늘어나는데 처리 결과는 시원치 않다고 지적한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이 접수한 민원은 2008년 6만5757건에서 2012년 9만4794건으로 44% 늘었다. 반면 민원 처리에 대한 만족도는 2010년 하반기 100점 만점에 69.3점으로 고점을 찍은 뒤 줄곧 64∼68점대에 머무르고 있다. 금융회사에 대한 불만을 감독기관인 금감원에 제기했지만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금감원은 저축은행 사태 뒤 소비자보호를 강조했지만 소비자 불만은 되레 커졌다”며 “소비자 중심의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회사에서 민원이 해결되지 않아 금감원을 찾아가면 금융사 편에서 문제를 조율한다고 말하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금융업계는 민원증가의 큰 요인 중 하나로 블랙컨슈머를 지목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소비자보호센터 관계자는 “소비자보호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이를 악용하는 고객이 늘었다”며 “민원 업무만 10년 넘게 담당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고객 얘기를 믿어주기가 힘든 때는 없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금감원은 블랙컨슈머의 개념을 정립한 뒤 이에 해당하는 민원은 금융사별 민원통계에서 제외해주는 ‘민원 다이어트’에 나섰다. 일부 은행은 아예 악성고객에게 법적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다수 금융사는 블랙컨슈머에 대해 쉬쉬하며 적극적인 대응을 미루고 있다.
C은행 소비자보호 담당자는 “특정 은행만 악성 민원인에 대응하겠다고 나서면 고객들에게 비난을 살까봐 은행연합회의 공통 대응책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