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 관계자는 “엔화 가치가 떨어져 한국으로 공장을 이전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많이 사라졌다”며 “엔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당분간 투자를 재개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급증했던 일본 기업들의 대(對)한국 투자가 올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엔화 약세에다 일본 경제 회복 조짐에 한국을 향하던 일본 기업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는 것.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한국에 대한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투자가 급감하면서 외자 유치 등 투자활성화를 통해 저성장을 탈출하려는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 우려된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 규모는 13억5500만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26억3700만 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한창이던 2007년 하반기(―53.7%) 이후 최대 감소율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 기업 투자 유치에 나섰던 지방자치단체들은 성사 직전이었던 투자가 무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울상이다.
지난해 한 일본 광학기계 제조회사로부터 부산 신항만 인근에 1000만 달러 투자 약속을 받았던 경남도는 올 들어 이 회사로부터 투자 연기를 통보 받았다. 경북에 대(對)중국 수출용 생산기지를 세우기로 했던 또 다른 일본 기업도 최근 경북도에 투자 계획을 보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북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일본 기업들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며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협의하다 올 들어 투자를 연기한 일본 기업만 3, 4개나 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국내 주력업종의 대외여건이 악화된 것도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등을 돌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경기도 투자유치 담당자는 “수출 둔화 조짐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자체 투자 계획을 보류하면서 이들 대기업에 납품하는 일본 기업들도 한국에 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보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규제 가시’로 유치한 투자마저 무산 위기
일본 기업들의 한국 투자 감소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장기 집권하면 엔화 약세 국면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역시 최근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등 투자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려던 기업들을 일본에 주저앉히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정책투자은행(DBJ)에 따르면 올해 일본 기업들의 자국 내 설비투자 규모는 15조9454억 엔(약 180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10.3%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일본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외국 투자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와 규제 완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과 외국 회사 간 합작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외국인 투자촉진법’ 개정안은 국회에 막혀 있는 상황이다. 일본 기업들이 약속한 2조 원의 합작투자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합작투자 관련 규제 완화와 함께 고용창출형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병기·홍수영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