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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고국의 이우환 미술관

입력 | 2013-08-08 03:00:00


요즘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찾는 미술애호가들이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장 이외에 꼭 들르는 곳이 있다. 프랑스의 억만장자인 프랑수아 피노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이다. 이 중 도가나는 낡은 세관 건물을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개조해 2009년 문을 열었다. 올해 6월 이곳에서 반가운 작품을 만났다. 깨진 유리판 위에 커다란 자연석을 얹은 이우환 씨(77)의 설치작품 ‘관계항’이었다.

▷안내 책자에는 ‘모노하(物派) 운동의 핵심 이론가 이우환, 화가 조각가 작가이자 철학자’라는 설명이 담겨 있다. 모노하는 1970년을 전후해 일본에서 태동한 전위 예술운동이다. 경남 함안 태생의 이 씨는 서울대 동양화과를 다니다 일본에 건너가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동서(東西)의 미술과 철학을 섭렵한 그는 ‘모노하’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동양사상과 현대미술을 융합한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은 2011년 한국인으로는 백남준 이후 두 번째로 이 씨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순백의 캔버스에 점을 하나 혹은 여럿 찍은 회화, 철판과 돌덩어리를 마주 보게 한 설치작품을 보며 관객들은 동양적 여백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세계적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국내 생존작가 인지도’ ‘국내 경매 결과로 본 낙찰총액 100위 작가’에서 1위로 그의 이름이 올랐다.

▷최초의 이우환 미술관은 2010년 일본의 나오시마 섬에 건립됐다. 최근 대구시는 2016년 개관을 목표로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을, 부산시는 작가가 직접 설계한 ‘이우환 갤러리’를 2015년 개관한다고 발표했다. 지척에 있는 두 도시가 동일한 시기에 미술관을 짓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미술평론가는 “제대로 된 미술관을 만들려면 초기부터 말년까지 작품을 모으는 것이 먼저다. 집만 지으면 다 된다는 생각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작가를 기리기 위한 미술관이 되레 그의 이름에 누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