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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부형권]정치와 외교 사이

입력 | 2013-08-08 03:00:00


부형권 정치부 차장

1956년 분리된 서울대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는 2011년 정치외교학부로 통합됐다.

두 과 사무실은 나란히 있다. 매년 입학 커트라인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절친한 라이벌 사이 같다.

둘은 가까웠지만 달랐다. 정치학(Political Science)과 외교학(International Relations)의 학문적 차이 때문일까. 정치학과가 남성스럽다면 외교학과는 여성스럽다. 다르게 표현하면 정치학과는 ‘고려대’스럽고 외교학과는 ‘연세대’스럽다. 외교학과는 저 잘난 멋에 살고, 정치학과는 어울리는 맛에 사는 것 같았다.

정치학과 모의국회는 진지하게 만들어도 예능 같고, 외교학과 모의유엔총회는 재밌게 만들어도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자로서 지켜본 정치와 외교, 정치인과 외교관, 여의도와 세종로도 달랐다.

우선 말이 다르다. 어휘(vocabulary) 선택에 큰 차이가 있다. 정치인은 주목받을 수 있다면 막말이고 욕설이고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귀태(鬼胎) 파문으로 그 뜻(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알게 된 국민이 많다.

정치인 vocabulary가 2만2000이라면 외교관은 2200도 안 된다. 일본 각료의 역사 망언에 대한 외교부 논평은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 정도가 최고 수준의 비난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접 밝혔듯이 북핵 문제에 북한 대변인 같은 정치적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한승주 주미대사가 외교적 수사(修辭·rhetoric)로 해명해야 했다. 미국 관리들이 “왜 노 대통령의 한국어 발언과 반 장관, 한 대사의 영어 설명이 다르냐”고 할 정도였다.

둘째, 승부의 자세가 다르다. 외교의 상대는 주권국가다. 완승하려면 전쟁뿐이다. 상대의 몫을 챙겨야 내 몫도 얻는 걸 외교관은 체득한다. 정치는 제압하지 않으면 제압당하는 전쟁의 일상화 같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피가 정치인 혈관에 흐른다.

외교의 협상도, 정치의 선거도 100 중 51을 얻으면 이긴다. 외교에서는 51을 뺏겨도 49가 내 몫이지만, 정치에서는 패배의 절망감만 남는다. 민주당 장외투쟁은 그 허탈감의 연장선에 있다.

셋째, 국익의 관점이 다르다. ‘무엇이 국익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좋은 외교관이다. 장재룡 전 대사는 1987년 반민주적 호헌(護憲) 조치를 주재국 정부에 선전하라는 본국의 지시를 사실상 무시했다. 정권의 이익이지, 국익은 아니라고 판단했단다. 그는 “몇 개월 뒤 6·29선언의 의의는 열렬히 설명했다”고 회고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미 미사일 지침개정 협상의 수석대표 시절 미 대표단이 청와대를 상대로 정치적 해결만을 추구하자 일갈했다. “백악관이 청와대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청와대가 우리 대표단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청와대 이익=국익’이라고만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정치인의 국익은? ‘국회의원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는 재선(再選)’이라는 정치판 불멸의 표어가 많은 걸 답해준다.

외교는 마냥 숭고하고 정치는 그저 한심한가. 그렇지 않다. 외교관은 상대국을 헤아리다 국민 마음을 못 챙기는 잘못을 종종 범한다. 그럴 때마다 듣는 비판이 ‘어느 나라 외교관이냐?’ 정치인은 그 민심을 얻는 데 정치생명을 건다.

박준우 신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외교관 출신이다. 김현미 민주당 의원은 “야당과 외교하겠다는 것이냐”고 우려했다. 아니다. 격려할 일이다. 야당을 주권국가 대하듯 존중해 달라고 요청할 일이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면 “박 정무수석이 외교하듯 정치해도 ‘누구의 정무수석이냐’고 혼내지 마라”고 부탁할 일이다.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