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깜빡했네. 전화 좀 해주지.”
“얘, 만나자고 한 사람이 바로 너거든. 네가 오늘 아침에 소집했잖아?”
나 역시 치매가 두렵다. 치매라는 것이 무의식이라는 저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것 같아서다. 나의 통제를 벗어나 ‘보이고 싶지 않은 나’를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100세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은 마지막 몇 년간 치매 증세를 보이셨는데, 사람만 보면 “밥 먹고 가시오”라는 말씀을 되풀이했다. 평생 대식구를 건사하고 손님이 오면 꼭 밥을 먹여서 보내던 습관의 반사작용일 것이다.
한 분은 아내의 치매증 때문에 집문서와 통장을 깊이 숨겨 놓았다고 했다. 아내가 엉뚱하게 부동산에 찾아가 집을 내놓기도 하고 은행에 가서 괜스레 통장에 있는 돈을 찾았다가 다시 저금하는 일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분의 아내는 집을 사고파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며 살아온 모양이다.
치매에도 예쁜 치매와 미운 치매가 있다고 한다. 나의 시어머님처럼 보는 사람마다 밥 먹고 가라고 권하는 분도 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뭔가를 훔쳐간다고 의심하고 욕을 하는 분도 있다. 행여 미운 치매에 걸릴세라 그것도 걱정이다. 살아오면서 애써 참았던 일들이 ‘교양’이란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무분별하게 터져 나올까 무섭다.
‘화를 참는 것이 성(城) 하나를 빼앗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나는 비교적 화를 잘 참는 성격인데, 그것은 결국 화를 내 안에 쌓아 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를 잘 참는 것보다 아예 화가 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 앙금으로 남아 있다가 훗날 의식의 끈을 놓칠 때 미운 치매로 나타날까 봐서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