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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날리우드’에서 배우는 창조경제

입력 | 2013-08-08 03:00:00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날리우드(Nollywood).’

미국의 할리우드를 빗대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비디오 필름 산업을 일컫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 수준인 가난한 나라. 날리우드는 그러한 나이지리아에서 현재의 보물이며 미래의 희망이라 여겨진다.

날리우드는 할리우드,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의 영화산업을 말하는 발리우드와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산업으로 꼽힌다. 날리우드는 일주일에 50편씩, 한 해 2000편가량의 영화를 찍는다. 발리우드엔 못 미치나 할리우드를 앞서는 숫자. 모두 1500만 원 안팎의 적은 예산으로 일주일이나 열흘이면 한 편이 완성되는 날림영화들이다. 하지만 날리우드 영화는 아프리카 전역은 물론 세계에 퍼져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사람들의 얘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할리우드나 발리우드와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날리우드는 영화 수출로 1년에 2800억 원 이상(7000억 원이란 통계도 있다)을 번다. 1억7000만 인구의 절반이 실업자인 나이지리아에서 날리우드는 100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는 나이지리아에서 농업에 이어 두 번째 많은 고용 인구.

날리우드는 나이지리아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 32세의 제이슨 조쿠는 영화배급 사업으로 3년 만에 90억 원을 벌었다. 그는 올해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뽑은 ‘지켜볼 아프리카 젊은 부호’ 10명에 들었다. 굿럭 조너선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날리우드를 “우리들의 반짝이는 불빛”이며 “세계에 나이지리아를 알리는 가장 훌륭한 홍보대사”라 부른다. 그는 날리우드가 원유와 농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바꿀 것으로 기대한다.

나이지리아를 넘어 아프리카에서 날리우드는 가장 성공적인 창조경제라 불린다.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지하자원과 노동력만이 살길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정신과 문화의 창의성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돈을 버는 최초의 산업이기 때문. 아프리카에서도 창조경제의 역사는 10년이 넘었다.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한 대안으로 많은 나라들이 창조경제를 선택했다. 가나, 세네갈 등 10여 개국 정부는 2007년 창조경제의 선구국인 영국의 ‘창조경제위원회’와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또 40여 개국은 2010년부터 해마다 ‘아프리칸 창조경제 회의’를 열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날리우드는 정부가 공들여 계획·집행한 창조경제 정책의 산물이 아니다.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났다. 항구도시 라고스 등의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극심한 범죄 탓에 밤이면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집 밖에 나올 수 없어 유일한 오락이 비디오로 영화 보기가 된 시민들을 위해 1990년 전후, 날치기로 만들기 시작한 영화가 날리우드가 되었다. 밑바닥 사람들의 심심함을 달래주기 위해 인도 등에서 영화를 수입하던 업자들이 마침내 나이지리아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던 것이 20여 년 지나 ‘창조경제’가 된 것이다.

날리우드가 아프리카 창조경제의 상징으로, 큰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마냥 장밋빛 미래만 있지는 않다. 창조경제의 바탕인 창의적 인재와 법과 제도의 부족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날리우드에 몰려드나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리기엔 역량이 모자란다. 그들을 창의 인재로 키울 교육이 나이지리아엔 별로 없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날리우드 영화의 90%가 불법 복제판이라 날리우드가 한 해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이 복제업자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영화 수출에 관한 어떤 법적 장치도 없다. 대통령은 올 3월 날리우드를 위해 21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사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위해 구체적으로 해 온 일은 없어 보인다.

이런 사정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의 창조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카메룬의 예술인 피터 무사는 “10여 년 동안 아프리카 전역에서 창조경제 건설을 위한 많은 워크숍, 세미나, 회의가 열렸다. 아프리칸 예술인들이 꿈의 세계로 인도되었다. 그러나 그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망은 꺾였다”고 한탄했다.

‘관광과 창조경제부.’

2011년 인도네시아가 창조경제를 위해 신설한 정부 부처 이름이다. 인도네시아는 겸손하게 영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은 창조경제를 다루는 부처를 만들었으나 부처 이름에 그 단어를 넣지 않았다. 사실상 ‘창조경제부’란 이름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처음 사용한 셈이다.

창조경제부가 등장하자 많은 국민은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이 작가나, 화가, 음악가로 직업을 바꾸는 것이 창조경제냐”고 비꼬았다. 외국의 학자들은 창조경제가 무엇이며, 창조경제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국민이 알게 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7년간 무역부 장관을 지내다 첫 창조경제부 장관이 된 마리 엘카 팡에스투는 경제 도약을 위해 몇 년간 창조경제를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창조경제는 전통 의상에서 비롯된 바틱 소재의 패션 등 14개 핵심 창조산업을 발표했다. 그러나 팡에스투 장관은 올 3월 나이지리아 방문 때 언론이 창조경제부의 업적에 대해서 묻자 “생긴 지 겨우 1년 반밖에 되지 않았다”고만 말했다. 창조경제의 추진이 만만치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의 경험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전히 창조경제 의문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당시의 혼란을 상기해 보라. ‘창조’란 말을 왜 사용하느냐는 의문이 상당했다. 정부가 인도네시아는 1년여 전에 창조경제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면 국민은 쉬 납득했을 것이다. 미래부가 창조경제의 구체안을 발표했을 때 여당조차 개념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만약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의 예를 들었다면 국민은 쉽게 이해했을지 모른다. 설마 이런 예를 창조경제 입안자, 전도사들이 모르지는 않을 터.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을 거론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했을까. 우리만의 것이라고 내세우고 싶었을까. 솔직하지 못한 정부가 국민을 헛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 교훈은 아프리카 각국이나 인도네시아 모두 정부의 계획과 논의는 무성했으나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조경제는 정부가 단기 목표로 지도·감독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형성된 국민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서서히 발전한다. 정부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