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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담화 20년/일본의 양심 세력]27년째 피폭 한국인 징용자 돕는 히라노 노부토씨

입력 | 2013-08-08 03:00:00

“피폭 징용韓人은 ‘日=전쟁 가해자’ 역사 일깨우는 존재”




히라노 노부토 평화활동지원센터 소장은 “피폭 한국인 징용자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의 많은 문제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한다. 나가사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히라노 노부토(平野信人·67) 평화활동지원센터 소장은 어머니 배 속에서 원자폭탄의 방사선에 노출됐다. 그는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이 투하된 이듬해인 1946년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 누나는 원폭의 직접적인 피해자다. 피폭 2세인 히라노 씨는 다행히 건강에 별다른 이상은 없다. 그러나 그의 고향 친구 중에는 고등학생 때 백혈병이 발병해 사망한 이가 적지 않다. 피폭 한국인 징용자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에는 이런 그의 성장환경이 있다.

교사였던 그는 1987년 한국을 방문했다가 피폭 한국인 징용자들을 처음 만났다. 피폭자로서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기대했던 그에게 한국인 피해자들은 “우리는 일본 피폭자와 다르다. 우리는 그곳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로부터 어떠한 치료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반감을 드러냈다. 전후 30여 년이 지난 당시까지도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만 원폭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인 피폭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그가 살펴본 한국인 피폭자들은 의료비 지원도 못 받고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비참한 생활을 했다. 원인을 제공한 일본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현실에 히라노 소장은 분노하고 실망했다. 그는 “피폭 한국인 징용자를 돕는 인생은 거기에서 결정됐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성금을 모았다. 자신의 월급을 쪼개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작은 정성을 전달했다. 그는 피폭 한국인 징용자들의 집을 직접 찾아가 전달하곤 했다. 거기서 가난한 그들의 살림을 보고 눈물을 삼키곤 했다. 성금 전달을 시작으로 오가기 시작한 한국행이 지금까지 300회를 넘었다.

피폭 한국인 징용자를 돕는 활동은 곧 재판을 통한 피해자 구제로 이어졌다. 판결을 통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성금만으로는 지속적인 지원에 한계가 있기도 했다. 그를 찾아간 6월 28일에도 한 징용 한국인 피해자의 소송 준비로 바빴다. 사무실 게시판에는 소송 일정이 가득했다.

히라노 소장은 활동 초기 일본 국내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 전쟁의 가해자임에도 원자폭탄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한국인 피폭자, 게다가 강제로 끌려와 노동을 하다가 피폭된 한국인의 존재는 ‘인정하기 싫은 불편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피폭 한국인 징용자는 일본 사람들에게 일본이 전쟁의 가해자임을 깨닫게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활동 초기에는 사무실 전화를 자동응답 상태로 돌려놓아야 할 정도로 많은 항의전화를 받았다.

일이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 한국인 지원 활동 27년째를 맞은 그는 “아직도 대부분의 일본인은 한국인 징용자나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존재를 잘 모르지만 최소한 나가사키에서는 많은 시민이 이제 이런 사실을 알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 지원뿐만 아니라 원폭피해자 추모 행사와 양국 청소년이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각종 교류 행사를 통해 피폭 한국인 징용자의 존재를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전체에 알리고 있다.

나가사키는 특히 원폭 피해를 직접 당한 도시로 시민들의 반전 의식이 다른 일본 도시에 비해 강한 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침략사관에 대한 반발도 상대적으로 강해 피폭 한국인 징용자의 존재를 그나마 빠르게 인정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히라노 소장은 지금까지 한국인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제기한 40여 건의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대부분이 3심까지 가는 싸움이었다. 피해자 증언을 수집하고 재판에서의 주장에 논리를 세우는 일을 그가 도맡았다.

그러나 여전히 할 일은 많다. 히라노 소장은 “지금도 피부암처럼 고가의 치료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일본에서 받아야 치료비가 지원된다는 점, 피폭자로 인정받는 범위가 좁아 많은 사람이 치료 혜택을 못 받고 있다는 점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6일과 9일은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폭이 떨어진 지 68년이 되는 날이다. 원폭 투하로 당시 징용 한국인 5만 명이 사망하고 5만 명은 피폭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사람은 2600여 명이다. 대부분은 원폭 피해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또 상당수는 2세와 3세에게 차별이 있을까 봐 등록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일본 미국 한국 정부에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병원 설립 및 정기적인 진료와 치료 등이 요구사항이다.

나가사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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