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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담화 20년] 강제징용… 생존자 피해보상 한일관계 ‘뇌관’

입력 | 2013-08-08 03:00:00

한국인 최소 70만명… “한일협정과 개인 청구권은 별개”
양국정부 견해 뒤집는 판결 잇달아




제국주의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위해 남자들을 대거 징병하면서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대책으로 한국인들을 마구잡이로 징용했다. 이들은 징용 한국인들을 탄광이나 군수공장에 투입해 중노동을 강요했고 저축 명목으로 쥐꼬리만 한 임금의 일부를 강제로 떼 냈다. 전쟁 비용을 조달하고 징용 노동자들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반도에서 징용된 노동자 수는 정확히 집계조차 되지 않지만 최소 7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1942년 한반도의 가구 수가 약 420만으로 추정되는 만큼 가장 적게 잡아도 여섯 집에 한 집꼴로 강제동원에 희생된 것이다. 이 가운데 사할린에 징용됐던 노동자 약 4만 명은 일본 패전 후 무국적 상태로 방치돼 일부를 제외하고는 고향 땅도 못 밟고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견해를 고수해 왔다. 2007년 4월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도 이 점을 확인했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 견해를 보여 왔다.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는 2003년 8월 강제징용 피해자 300여 명이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적포기서를 제출하겠다고 하자 기자회견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 합의의사록에 강제징용자 부분이 포함됐고 정부는 신문 공고를 통해 1975∼1977년 보상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비판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정부는 2007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지원법’을 제정해 2차 보상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사법부는 정부 견해를 뒤집는 판결을 최근 잇달아 내놓았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10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고법은 지난달 30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들 법원은 당초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5월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한 바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도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등 일각에서는 배상을 위한 한일 공동 재단 설립방안을 제안하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낮다.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또 하나의 뇌관을 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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