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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해]샐러리맨 신화 윤석금의 흥망

입력 | 2013-08-09 03:00:00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충남 강경상고와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윤석금은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비빌 언덕 하나 없었지만 판매사원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외판사원 한 달 만에 국내 1위, 1년 만에 54개국 영업사원 중 1등을 차지했다. 입사 9년 만에 상무를 끝으로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한 윤 씨는 1980년 ㈜헤임인터내셔널을 세운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과외를 금지하자 유명 학원 강사의 강의를 녹음해 판매하는 장사였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직원 7명으로 시작했다. 자본금 7000만 원짜리 이 회사가 웅진그룹의 모태(母胎)인 웅진출판이다.

▷88 서울올림픽 후 국민소득이 높아지자 물 시장에 눈을 돌렸다. 이듬해 고가 정수기를 파는 웅진코웨이를 세워 정수기 붐을 일으켰다. 식음료(웅진식품)에 이어 화장품(코리아나화장품) 골프장(렉스필드 컨트리클럽) 저축은행(서울저축은행) 건설(극동건설) 태양광(웅진폴리실리콘)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2011년 매출액 6조1500억 원, 임직원 4만5000명으로 재계 32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를 재벌 반열에 올려놓은 건설회사와 저축은행은 금융위기를 맞아 부도를 내면서 그룹 전체를 휘청거리게 했다.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중구난방식 사업 확장 외에도 윤 씨의 인재 등용이 그룹의 실패를 불러왔다고 분석한다. 윤 씨 본인도 짧은 ‘가방 끈’을 만회하기 위해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최고경영자과정과 최고위과정을 4개나 수료했다. 국내 사정에 어두운 해외 유명 대학과 컨설턴트 출신을 요직에 중용한 게 역설적으로 그의 사업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이원곤)는 윤 씨를 2700억 원대의 사기와 횡령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개인 호주머니를 챙기지 않고 회사를 살리려고 애쓴 것을 참작해 불구속한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 상태인 웅진그룹은 연말까지 빚잔치를 하고 나면 웅진씽크빅만 남게 된다. 윤 씨는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패자부활을 노려 볼 일이다. 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알려왔습니다]

◇건국대 총동창회는 본보 9일자 A27면 ‘샐러리맨 신화 윤석금의 흥망’ 기사의 “윤 회장 본인도 ‘짧은 가방 끈’을 만회하기 위해”라는 표현은 윤 회장이 졸업한 건국대와 건국대 경제학과의 명예에 상처를 입히는 부적절한 표현으로 유감스럽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