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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순간]“탱크주의 광고 카피로 대박… 슬슬 딴 생각이 들었다”

입력 | 2013-08-10 03:00:00

‘감시자들’ 흥행 이끈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




제작한 영화 8편을 모두 흥행에 성공시킨 이유진 대표는 영화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이 대표는 “재능도 감각도 없지만, 맏이 특유의 성실성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래로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영화사 집 제공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45)를 만난 때가 지난달 중순이었다. 그녀는 영화 ‘감시자들’의 흥행 성적이 500만 명을 넘으면 인터뷰 기사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전작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적(460만 명)을 뛰어넘은 뒤 기사가 나와야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9일 현재 ‘감시자들’을 본 관객은 549만 명으로 흥행 대박을 쳤다. 제작비가 45억 원인 이 영화는 시사회 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을 낙관하기는 어려웠다. 제작비가 2억 달러(약 2200억 원)가 넘는 할리우드 대작 ‘퍼시픽 림’이나 이병헌이 나오는 ‘레드: 더 레전드’, 제작비 225억 원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미스터 고’ 같은 막강한 경쟁 상대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감시자들’은 7월 영화 시장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으면서 당초 예상을 뒤집었다.

내놓는 영화마다 히트하며 이 대표는 요즘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작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원래 그녀의 꿈은 영화가 아니었다.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한 그녀의 첫 직업은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였다. 지금은 해체된 해태그룹 계열 코래드에서 7년간 일했다.

“당시 꽤 잘나갔죠. 하하. 대우전자의 ‘탱크 시리즈’ 광고가 제 작품이었어요. 당시 대우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비해 소비자 호감도가 한참 떨어지는 회사였어요. 하지만 배순훈 회장을 모델로 내세워 튼튼한 제품임을 강조하는 탱크주의 광고가 나가자 이미지가 급속도로 좋아졌어요. 근데 직장에서 인정받자 이상하게도 슬슬 딴 생각이 나더군요.”

1997년 회사를 떠났다. 외사촌 언니인 오정완 씨가 대표인 영화사 봄에 영화 ‘정사’의 마케팅 디렉터로 발을 들여놓았다. 코래드에서는 사표 수리도 안 해준 채 “언제라도 자리를 비워둘 테니까 돌아오라”고 했다. 회사를 떠난 뒤에도 1년 넘게 통장에는 월급이 들어왔다. 전 직장 동료들은 “꽃방석 버리고 가시방석으로 갔다”며 난리였다.

‘광고회사와 영화 마케팅이 뭐 다를 게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예상을 빗나갔다. 300명이 넘는 회사에서 오전 9시 출근해 펜만 들고 일했는데, 10명도 안 되는 영화사 일은 끝이 없었다.

“말이 마케팅이지 0부터 100까지 모든 걸 다 해야 했어요. 영화 광고 기획, 배우 캐스팅, 짐 나르기까지…. 광고회사에서 일할 때 연봉 4000만 원을 받았는데, 700만 원으로 줄었죠. ‘이 돈 받고 누가 일하느냐’고 했더니 ‘영화 하려는 사람이 줄섰다’고 하더군요. 광고는 길어야 한 달이면 일이 다 끝나는데, 영화는 2년 동안 한 작품으로 지지고 볶고…. 영화계 사람들은 밤늦도록 술 먹고 오전에는 전화도 안 되잖아요. 저는 영화에 죽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벌판에 선 느낌이었죠.”

그래도 꾹 참고 몇 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녀가 손댄 첫 영화 ‘정사’가 1998년 10월 극장에 걸렸다. 추석 연휴에 ‘정사’를 보기 위해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 앞에 긴 줄이 선 것을 보고 짜릿한 쾌감이 들었다. 오롯이 내가 해냈다는 느낌이 들며 ‘아, 이게 영화의 맛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휴대전화를 들어 코래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 이제 못 돌아갈 것 같아요.”

‘정사’는 당시로서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영화였다. 포스터의 영화 제목은 한자로 ‘情事’라고 세로쓰기를 했다. 15초 TV 광고도 한 컷으로 이뤄진 한 신으로 만들었다. 이정재가 이미숙에게 서서히 다가가 키스하는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살렸다. 당시 한국의 애정 영화는 멜로 아니면 신파였던 상황에서 이 작품은 새로운 모색이었다.

“고급스러운 멜로 영화로 알리고 싶었죠. 주변에서는 ‘에로 영화 관객이 상당한데, 이런 이미지로는 관객이 안 든다’고 말렸죠. 영화에 자동차를 협찬한 기업에서는 ‘제목이 너무 세다’며 바꾸라고 요구하기도 했어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정사’는 멜로 영화로는 드물게 서울에서만 3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그녀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 ‘달콤한 인생’(2005년) ‘너는 내 운명’(2005년) 같은 흥행작의 프로듀서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배용준 전도연 이미숙이 나온 두 번째 영화 ‘스캔들…’은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이 가는 영화다. “새로운 시도였죠. 신선한 사극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전에 사극은 무협이나 에로 영화가 전부였어요. 투자사에서도 액션이 없는 사극에 투자하는 걸 걱정했어요. 사극에 영어 제목을 붙인 것도 파격이죠. ‘아 이 영화 안 되면 때려치워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스캔들…’은 관객 352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업계에서 인정받고 안정적인 생활이 이어지자 또 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사 봄에서 독립해 2005년 자기 회사 ‘집’을 차렸다. 초기 작품 ‘그놈 목소리’ ‘행복’ 같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강동원 임수정 김윤석이 나오는 ‘전우치’는 제작비 120억 원이 든 대작이었다.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데 회사 다 말아먹을 일 있냐’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100억 원이 넘는 영화가 별로 없었다.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자칫 유치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였죠. 최동훈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꽤 필요했어요. 하늘을 날고 맘대로 점프하는 전우치를 표현하기 위해 와이어 액션을 많이 썼죠.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와이어 액션의 노하우가 별로 없었어요. 하루 종일 한 컷 찍는 날도 있었어요. 고대소설을 누구나 좋아하는 판타지 가족 영화로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시사회 뒤 반응이 싸늘했어요. 너무 유치하다고….” 하지만 ‘전우치’는 613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렸다.

‘감시자들’을 공동 연출한 조의석 김병서 감독은 신인급이라 투자를 유치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서울 도심 곳곳을 고스란히 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촬영이 힘들었다.

“제임스(정우성)가 건물 옥상에서 상황을 살피는 장면이 있어요. 강남 테헤란로 건물주들을 모두 찾아가 촬영 허가를 요청했지만 퇴짜를 맞았죠. 테헤란로 건물은 대부분 대기업이 주인인데, 영화를 찍겠다고 하니 ‘멍미’(뭐야) 하는 분위기였죠.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건물주와의 친분을 내세워 간신히 찍었어요.”

경찰과 범죄자들의 추격전은 올해 설 연휴에 서소문 고가도로를 막고 찍었다. 경찰에서 이틀간 오전 시간을 허락받았는데 통제를 해도 차량이 몰려들었다. “운전자들이 차를 세우고 ‘왜 길 막고 영화를 찍느냐’고 욕을 하고 난리였어요. 정우성까지 나서서 사인해 주며 이분들을 달래서 겨우 찍었어요. ‘달콤한 인생’ 찍을 때는 한남대교, ‘그놈 목소리’ 때는 동호대교를 막아 봤어요. 서울 시내 촬영 정말 어려워요.”

‘감시자들’의 흥행 성공을 두고 영화계에서는 “역시 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07년 첫 영화 ‘그놈 목소리’부터 지금까지 내놓은 영화 8편이 모두 100만 명을 넘겼다. 다 합쳐 2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대박을 치다가도 때로는 쪽박이 나는, 부침이 심한 영화계에서 이런 꾸준한 성적은 드문 일이다. 심재명 이은 대표가 이끄는 명필름 외에 이런 성적을 낸 영화사는 없다.

차기작은 이재용 감독이 연출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이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이 원작으로 조로증에 걸린 아들과 아들보다 더 젊은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녀는 “이제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니,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술을 한 잔도 못해요. 영화계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죠. 제작사 대표면 가끔 룸살롱에 가서 비즈니스도 해야 하는 데 말이죠. 시간 나면 집에서 주로 TV를 봐요.”

그녀는 한 가지 독특한 취미가 있다. 2004년부터 빠져든 탱고다. 2005년에는 탱고의 본고장 아르헨티나로 춤을 배우러 떠나기도 했다.

“제가 운동 못하는 ‘몸치’인데, 영화 ‘탱고 레슨’(1998년)을 보고 춤에 빠져들었어요. 머리로 일하는 저에게 몸의 언어인 탱고는 삶의 오아시스죠. 제가 기운이 없어 보이면 설경구 씨가 직원들에게 말해요. ‘어이, 이 대표 빨리 탱고 보내’라고요.”

“영화 마니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감각도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이 대표가 제작자로 성공한 비결은 뭘까.

“항상 평범한 게 콤플렉스였는데, 성실함으로 버틴 것 같아요. 작품과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은 좀 있는 것 같고요. 일중독이라는 말도 들어요. ‘감시자들’ 감독들이 저에게 냉정하다며 말하더군요. ‘어우, 너무 쿨해요’라고요.”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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