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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개편안 ‘중산층 짜내기’ 반발 커지는데… 靑 “거위 깃털을 살짝 뺀 것”

입력 | 2013-08-10 03:00:00

조원동 수석 “마음열고 받아주길 읍소”… 與 “부담증가 시정” 野 “정부案 저지”




與 “국감은 국민과 함께”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이 9일 국회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정감사를 진행하겠다”며 9월 정기국회에서 진행될 국정감사에서 국민을 상대로 질문을 공모하는 ‘응답하라 2013’이 적힌 안내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정부가 8일 발표한 2013년 세제 개편안에 대해 ‘중산층 짜내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납세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야는 9일 한목소리로 이번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청와대는 “거위의 깃털을 살짝 뺀 것”이라는 방어논리까지 동원해가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일단 “이번 세제 개편안은 소득계층 간 형평성을 높이고 대기업 등에 대한 과도한 세제 지원을 축소해 세원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간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 온 ‘유리지갑’ 중간소득계층 샐러리맨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증가한다면 이는 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의 이런 비판은 개편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전체 근로자의 28%(연소득 3450만 원 이상)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세금에 민감하고 정치적 의사가 뚜렷한 화이트칼라 계층이어서 올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심 이반’을 주도할 개연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여당은 의료비, 교육비의 세액공제율을 개편안보다 높이고, 봉급생활자의 일부 비과세 감면 혜택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개편안을 ‘중산층 세금폭탄’이라고 규정하고 총공세에 나섰다. 김한길 대표는 9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개편안은) 명백한 민생 역행으로 중산층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세법이 이대로 통과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국면에서 열세를 보였던 야당이 세금 논란을 반격의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도 숨어 있다.

:: 거위 깃털 뽑기 ::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재무상인 장바티스트 콜베르가 “바람직한 조세 원칙은 거위가 비명을 지르지 않게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세행정 분야에서 유명한 경구(警句) 중 하나다. 깃털(세금)을 많이 얻으려고 거위(경제 상황)를 함부로 다루면 거위가 소리를 지르는 만큼 세수 확보를 위해 급격히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늘려선 안 된다는 취지다.
▼ 靑 “年 16만원은 감내 수준” vs “직장인 주머니만 털어” ▼

野 유리지갑 퍼포먼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소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봉급생활자들의 지갑을 털어간다는 의미에서 모형 돈을 유리지갑에서 떨어뜨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세제 개편안을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현재 여야 동수로 구성돼 있어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법안이 통과될 수 없다는 점도 야당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민주당은 특히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축소하고 교육비와 의료비를 세액공제 형태로 바꾸는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기획재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현재 상태의 개편안은 상임위에서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은 세수 확보를 위해 소득세법 최고 구간을 현행 3억 원 초과에서 1억5000만 원 초과로 낮추는 별도의 세제 개편안을 만들어 조만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직접 브리핑을 열어 불 끄기에 나섰다.

조 수석비서관은 “(이번 개편안은) 봉급생활자를 때려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편안에 따르면 국민 개개인이 내는 세금 가운데) 고소득자에게 80%를 걷고 연소득 5500만 원 이하의 서민 중산층은 오히려 보조금 등을 통해 기존보다 40% 세금을 내지 않는 효과를 보게 된다”며 “대선 때 약속한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는 것이지 세상에 없던 증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봉급생활자가 손해를 본다는 지적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다른 설명을 못 드리겠다. 아무래도 월급생활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여건이 낫지 않나. 마음을 열고 국민 뜻 모으는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읍소한다”고 말했다. 또 “연소득 3450만 원 이상 근로자들의 세금이 증가되는 건 사실이지만 연소득 3450만∼7000만 원을 받는 근로자가 추가로 부담하는 세금은 1년에 16만 원, 매월 1만3000원 정도”라며 “우리 사회에서 이 정도는 성숙하게 (재원을) 분담하는 측면에서 감내하며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수석비서관은 “세금 걷는 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며 그것이 이번 세제 개편안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국민이 모르게 세금을 거둬 가려는 꼼수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거위의 깃털 비유는 조세 정책의 오랜 교본”이라며 “세금을 과도하게 높여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경제 활력을 저해해선 안 된다는 얘기며 이번 개편안도 이런 점을 고려했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봉급생활자들은 연말 소득공제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축소와 의료비, 교육비의 세액공제 전환 등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출판사 직원 이모 씨(33·여)는 “의사나 변호사, 대형 학원 원장 등 소위 ‘현금 장사’ 하는 사람들은 내버려 둔 채 봉급 받는 사람들의 혜택만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납세자연맹이 8일 시작한 증세 반대 서명 운동에는 이날 오후까지 48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개편안 백지화를 요구했다. 납세자연맹 관계자는 “정부가 ‘근로자 1인당 세금 증가액이 16만 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며 “시뮬레이션 결과 연봉 4400만 원을 받는 직장인도 19만1850원의 세금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제 개편안이 세수 증가 필요성과 이를 위한 증세(增稅)를 솔직하고 당당하게 국민에게 설득하는 정도(正道)를 밟지 못하고, 지하경제 양성화와 숨겨진 세원 발굴 의지도 보여 주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부)는 “지하경제 척결 의지가 높은 시점에 개인사업자 등과 관련된 세제를 개편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며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봉급생활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쉬운 길’을 택했다”고 비판했다.

최창봉·윤완준 기자·세종=박재명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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