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이렇게 본다면 지금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 댓글 관련 사건의 국정조사는 문제가 있다. 민주당은 올 3월 17일 새누리당을 압박해 국정조사 계획을 쟁취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와 맞바꾼 전리품이다. 이때는 검찰이 경찰로부터 수사를 넘겨받기도 전이다. 6월 14일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정치 및 선거 개입 혐의로 관련자들을 기소하자, 민주당은 이번엔 장외투쟁을 위협하며 국정조사를 관철시켰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인데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할 목적’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만하지 않은가.
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떳떳하다면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출석해 당당히 증언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하지만 본인들이 정당한 이유를 대거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부한다면 누구도 그것을 강제할 수는 없다. 그게 법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면 동행명령과 고발이라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국정조사는 조자룡이 헌 칼 쓰듯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되는 초법적 권한이 아니다. 아무리 명분이 훌륭해도 법의 구속을 받아야 하고, 아무리 여야 합의를 존중해도 법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법 위반을 규명하겠다는 국정조사가 스스로 법을 어겨가며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장외로 뛰쳐나간 민주당은 국정조사 정상화에 합의하고도 국회에 복귀하지 않고 또다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 개혁은 예외로 치더라도 나머지는 현 단계에서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진상 규명은 재판과 국정조사의 몫이고, 책임자 처벌과 대통령 사과는 진상 규명 이후에 결정할 문제다. 민주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에 대한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별도로 특검을 발의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검찰의 기소만으로 유죄를 단정하고, 불리하면 검찰 수사를 배척하는 건 법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독선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태일 영남대 교수, 황주홍 민주당 의원은 ‘새 정치 난상토론’이란 공저에서 민주당의 문제점을 콕 집어서 지적했다. 요약하자면 자기의 철학-이념- 노선에 대한 비타협적인 확신을 갖고 있고, 여전히 민주 대 반(反)민주의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부정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04년의 탄핵정국, 2008년의 촛불정국, 2009년의 노무현 서거정국 등 너무 잘나갈 때 절제를 하지 못해 결국 체질 개선의 소중한 기회마저 날려버렸다고 했다.
작년 총선과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전에 없이 진지하게 반성과 성찰을 다짐했다. 겨우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지금의 민주당에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억지와 독선, 자기만이 옳다는 오만, 상대를 부정하는 증오만 보이니 안타깝다. 훗날 누군가는 또 말할지 모른다. 2013년 여름, 민주당은 네 번째 기로에서 다시 한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