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이준관(1949∼)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화가 김종학 씨의 ‘여름’.
에어컨과 선풍기의 기계 바람으로도 다스려지지 않는 이 강렬한 여름날에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계절 초입부터 입만 열면 덥다고 투덜대느라 해 떨어진 하늘 한 번 제대로 올려다볼 틈도 없었던 우리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여름과 작별하고 난 뒤에서야 헤어진 여름을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더우면 폭염이라고 비 오면 폭우라고 아우성치는 사이 자연의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 입추를 지났다. 이렇게 우리 생애 또 한번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들판에 열린 곡식과 과일은 바로 이 더위를 먹고 알차게 여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오곡백과 풍성한 추석이 올 것이다. 오늘 밤은 더위와 싸우겠다는 생각 대신 열손가락에 달을 매달고 별을 바라보고 싶다.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이니…. 자연의 시절이나 사람의 시절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