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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라이사는 예뻤다” 82세 고르비의 애잔한 연가

입력 | 2013-08-10 03:00:00

◇선택/미하일 고르바초프 지음/이기동 옮김/420쪽·2만1000원/프리뷰




“나는 역사의 문을 내 손으로 두드렸고, 그 역사의 문들은 나와 함께 땀 흘린 사람들과 내 앞에서 하나씩 열렸다.”

오늘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가 자서전을 썼다. 20세기 역사를 바꿔놓은 인물,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82)이다.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와 독일에서 차례로 출간된 이 자서전은 1999년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와의 이야기에 비중을 뒀다. 책 표지에도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었다.

1931년 러시아 북부의 스타브로폴 지방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대 법대에 입학하면서 시골뜨기에서 엘리트로 성장한다. 그는 대학 시절 댄스파티에서 라이사 여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대학생 신분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각자 남녀 기숙사에 살면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정식 부부였지만 기숙사 규율 때문에 그는 밤 11시까지만 라이사 여사의 방에 머물 수 있었다.

물론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과 농업 담당 서기, 정치국원을 거쳐 서기장에 오른 그의 정치인생도 빼곡히 쓰여 있다. 특히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그는 “내가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련과 전 세계 정치에 엄청난 부채를 졌다”면서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때와 같은 목표, 다시 말해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사회주의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1996년에 쓴 회고록에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을 ‘위선자’ ‘약탈자’ ‘주정뱅이’ ‘권력의 화신’으로 묘사한 바 있다. 이번 자서전에도 연방 해체를 추진한 옐친 세력에 대한 언짢은 심경이 엿보인다.

그는 46년 세월을 함께해 온 부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팔순 넘은 노인이 아내를 추억하며 책 곳곳에 “아내는 예뻤다” “우아하고 매력적이고 정말 여성스러웠다”라고 팔불출처럼 써 놨으니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떻든 인간적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