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박유하 지음/327쪽·1만8000원/뿌리와이파리
일본군 위안소 입구에 붙은 격문. 왼쪽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의 서비스’, 오른쪽은 ‘성전에서 대승한 용사를 대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야마토 나데시코는 ‘아름다운 일본 여성’의 대명사라는 점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결국 일본인 위안부의 대체제였음을 보여주는 한편 그들에게 신체적 위안뿐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 요구했음을 보여준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저자가 그런 천박한 일본 우익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인권침해 범죄의 책임이 일본제국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의 복합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이 문제를 무조건 일본의 국가범죄와 배상으로 연결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영원한 볼모로 잡아 두는 짓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이라면 ‘아니 왜 우리가 오만한 가해자를 철저히 단죄하는 데 인색해야 하지?’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작 우리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은 외면하고 일본에 불리한 내용만 확대 재생산하는 기억의 조작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그래서 이해와 화해가 아니라 분노와 적대의 악순환만 초래하고 있다면?
박유하 교수
그런 저자의 문제의식은 1990년 초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가 왜 2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는가에서 출발한다. 한국인들은 이를 일본의 우경화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한국인들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던 문제를 키워 놨고, 이로 인해 일본 우익뿐 아니라 이 문제에 죄의식을 느끼던 일반 일본인까지 염증을 일으키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나름의 사죄와 보상을 했다. 최근 그 존재가치가 새삼스레 부각되는 고노 담화(1993년)는 “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라고 인정하면서 “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다. 무라야마 내각은 한발 더 나가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조성해 위안부 1인당 200만 엔의 보상금과 총리의 사죄편지를 보내고 7억 엔 규모의 의료복지사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직접적 강제연행까지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 구조적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다. 또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자민당 의원이 세 배나 많은 국회에서 입법이 불가능해 민간참여를 앞세웠지만 사실상 정부 돈(10년간 1000억 엔)으로 기금을 마련했다. 우리말로는 보상금으로 번역된 ‘쓰구나이’란 표현은 죄를 씻는다는 속죄의 의미가 담겼다.
2003년까지 지속된 이 사업을 통해 필리핀 대만 한국의 위안부 285명이 보상금을 받았다. 한국에선 61명이 이를 수령했다(수령을 강력 거부한 위안부 할머니의 수와 비슷하다). 이 기금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전체 사업비의 90% 가까이가 일본 정부 국고에서 지출됐다.
우리 기억 속의 위안부는 ‘일본군 군홧발에 짓밟히는 가녀린 열다섯 소녀’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투쟁하는 투사’다. 일제가 14∼25세 여성 노동력 동원을 위해 여학생 중심으로 모집한 정신대와 혼동한 결과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이런 착종된 이미지가 일본에 대한 증오를 강화시키면서 정작 동족을 팔아먹은 우리의 죄를 눈감게 만든 것은 아니냐고.
저자의 이런 도발적 주장에 수긍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만 매섭게 노려봐 온 우리 자신의 모습도 한번쯤 거울에 비쳐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