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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협박이냐, 정치 쇼냐… 北, 핵 배낭 공개 노림수

입력 | 2013-08-11 00:00:00

7·27 북한 열병식은 무기체계 놓고 벌이는 또 하나의 전쟁




7월 27일 오전 10시. 텅 비어 있던 광장에 순식간에 대규모 병력이 운집했다. 이들을 내려다보는 연단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60돌’ 기념 열병식의 시작이었다. 토요일이었던 이날,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 국군정보사령부 등의 북한 전력분석 담당자들은 대부분 휴일을 반납하고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되는 2시간 남짓의 열병식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행사를 앞두고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진행한 예행연습에 대규모 병력과 장비들이 집결한 모습을 위성사진이 포착했기 때문이다.

통상 군과 정보당국이 북한의 신형 무기체계를 확인하는 작업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북한군 부대 사이의 교신이나 훈련 내용을 파악하는 감청과 신호정보 확인이 첫 번째. 이미 파악하고 있던 것과 사거리나 제원, 작동 준비시간 등이 다른 특이정보를 감지하는 경우다. 분석 작업을 거쳐 새 무기체계를 개발 중인 것으로 의심되면 군 당국은 이내 영상정보 수집을 요청한다. 한국군 자체 정찰수단은 물론 미국 측 군사정보위성이나 정찰기를 통해 해당 시점, 해당 무기체계가 노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집중 촬영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렇게 확인한 신형 무기체계는 한미연합군이 함께 작성하는 한반도정보평가(Peninsula Intelligence Estimate) 보고서 등을 통해 공식 취합되고, 그 결과는 주요 작전계획이나 국방중기계획 등 무기도입 사업 일정에 반영된다.


한반도 정보당국자들에게 ‘큰 장’

김일성·김정일 생일이나 인민군 창건 기념일 등에 진행하는 열병식은 한국군 당국자들에게 이러한 북한 무기체계 분석의 마침표를 찍는 ‘행사’나 다름없다. 그간 레이더나 흐릿한 위성사진으로만 존재를 파악했던 신형 무기의 ‘실물’을 세세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 북측 또한 그간 개발해온, 혹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첨단무기들을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공식화’하는 수순을 거쳐왔다. 수도권을 위협하는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 단거리부터 중거리에 이르는 주요 탄도미사일, 폭풍호 등 신형 전차가 모두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7월 27일 열병식은 남과 북의 모든 정보당국자들에게 ‘큰 장’이 열리는 날이었던 셈이다.

이번 열병식을 앞두고 관계당국 내부에서는 북측이 몇몇 특정 무기체계를 공개할 것인지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북측에서는 ‘주체100포’로 부르는 300mm 방사포가 첫 번째다. 방사포란 포탄 여러 발을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는 이동식 포병 전력으로, 우리의 다연장로켓에 해당한다. 발사실험의 레이더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이 방사포의 사거리가 기존 240mm 방사포에 비해 2배가량 긴 것으로 나타난 것. 5월 18일과 19일 북측이 동해로 잇달아 쏘아 올린 발사체는 단거리 탄도미사일과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이 때문에 이 방사포를 실험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존 탄도미사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설계의 미사일이 등장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하나의 발사체 안에 두 개 이상의 고폭탄을 장착하는 다탄두미사일이 대표적이다. 궤도 정점을 지나 목표지점에 인접했을 무렵 여러 개의 탄두로 흩어지는 이 미사일은 패트리어트 등 한미연합군이 보유한 요격미사일을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기존 요격미사일은 대부분 한 번에 탄두 하나 이상을 격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탄두미사일은 미·소 냉전시절 두 나라가 서로의 미사일 요격체계를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로 개발했다. 1980년대 실전 배치됐고, 프랑스와 영국 등도 미국 기술을 이전 받아 독자적인 시스템을 개발했다. 중국 역시 2000년대 초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군 당국은 이미 냉전시절 소련의 관련 기술이 북측에 제공됐고, 평양이 이를 바탕으로 개발을 진행해온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열병식마다 한미 관계당국에서 가장 주의를 집중하는 부분은 소형화된 핵무기의 등장 여부다. 특히 평양이 ‘다종화·소형화·경량화’를 공공연히 언급한 3차 핵실험 이후 이에 대한 관심이 한층 급증했다는 게 안보당국 관계자들의 설명. 열병식에서 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크기의 핵탄두를 공개하거나, 아예 미사일에 장착한 핵탄두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충격요법’을 구사할지 모른다는 관측이었다.


核 평가절하 미국을 의식한 행동

반면 7월 27일 당일 진행한 열병식은 예상보다 한층 축소된 형태였다. 지난해 4월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에 비해 병력은 2000여 명, 장비는 절반 이상 줄었다고 군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95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전승 열병식을 재현하는 콘셉트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 동원된 무기체계는 이미 이전 열병식을 통해 공개된 바 있는 무수단과 KN-08 등 탄도미사일이 주를 이뤘다. 170mm, 240mm 자주포의 발사대 차량이 신형으로 교체된 것이 눈에 띄었을 뿐, 공개가 확실시되던 300mm 방사포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눈길을 끈 것은 무기체계 대열의 맨 앞에 등장한 특수부대 모습이었다. 트럭에 탑승한 중대 규모 병력의 가방에 핵무기를 의미하는 방사능 경고표식이 보란 듯 부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열병식에서도 같은 배낭을 멘 부대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 표식이 없었다. 배낭을 최대한 클로즈업한 조선중앙TV의 카메라 기법은 이른바 ‘핵 배낭’을 이미 개발해 실전에 배치했다고 과시하려는 속내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핵폭탄을 이러한 크기로 소형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원자력공학 전문가인 강정민 KAIST 초빙교수는 “플루토늄 탄이든 우라늄 탄이든, 소형화된 핵폭탄은 본질적으로 구형(球形)을 벗어나기 어렵다. 열병식에 등장한 납작한 가방에는 장착이 안 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3~4회 핵실험만으로 그 수준의 소형화 기술을 확보할 수는 없다는 것. 일각에서 제기된 더티 봄(Dirty Bomb), 즉 통상의 폭탄에 고준위 핵폐기물을 감싸 목표지점을 방사능에 오염되게 만드는 낮은 수준의 폭발물로 보기도 쉽지 않다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이 경우에도 핵폐기물이 뿜어내는 방사능을 차단하려면 적잖은 무게와 부피의 차폐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핵 배낭일 개연성이 거의 없는 물건을 굳이 열병식에서 공개한 평양의 의도는 무엇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북측도 한국이나 미국이 열병식에 등장하는 무기체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잘 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신들의 행사가 남측의 군사 대비태세나 작전개념, 심지어 추가 무기도입 사업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무기를 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상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만드느냐다.

먼저 핵 배낭의 경우, 계속되는 핵실험으로도 여전히 북한의 핵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미국 측을 의식한 행동일 공산이 커 보인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군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해 미 국방부 등의 경각심이 사뭇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 측 당국자들이나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는 이러한 능력이 자국 본토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에 가깝다. 사거리가 충분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그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된 핵탄두 제조기술이 불충분하다는 인식이다. 이와 함께 미사일 장착 핵폭탄 같은 강한 위력의 전략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의 대량보복을 피할 수 없으므로, 만들 수 있다 해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핵 배낭에 담긴 북측 의도는 바로 이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방 크기로 소형화할 수 있다면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500kg 내외의 핵탄두를 만드는 일은 당연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사시 1kt 내외의 소형 전술핵무기를 남한 후방에서 사용할 경우 과연 미국이 전략핵무기로 평양을 타격하는 식의 대량보복을 감행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깔려 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은 이미 얼마든지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그럼에도 미국이 핵 보복을 가할 수는 없는 ‘교묘하고도 골치 아픈’ 핵무기를 만들어놓았다는 제스처인 셈이다.

이러한 의도는 앞서 한국군 당국에서 공개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던 다른 주요 무기체계도 마찬가지다. 다탄두미사일 역시 북측의 기술력으로는 아직 의미 있는 ‘물건’을 만들기 어렵다는 게 군 당국이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 그러나 2~4월 북측의 미사일 위협이 반복되는 동안 남측 국방부가 그 대응수단인 킬체인(Kill Chain)과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로 무력화하겠다고 설명하자, 다시 이를 유명무실화할 수 있는 다탄두미사일의 개발 완료가 임박한 것처럼 통신이나 신호정보를 흘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남측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요격체제를 구축해봐야 이마저 돌파할 수 있는 더 높은 수준의 무기를 이미 준비하고 있다는 과시다. 장군과 멍군이 반복해서 오가는 체스게임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두뇌싸움

북한이 7월 27일 열병식에서 공개한 ‘방사능 표식’ 부대. 주요 전력 열병종대의 선두 부분에 등장했다.

300mm 방사포의 경우는 훨씬 직접적인 효과를 노린다. 주 목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평택 기지이전사업. 1990년대 이래 진행된 170mm, 240mm 장사정포의 전진배치는 의정부 등에 배치된 주한미군 2사단에 최대 위협이었다. 이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려는 사업의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음은 미군 측 당국자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반면 평양은 이러한 기지 이전을 미국 측의 대북 군사행동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사전조치로 인식했고, 그에 따라 평택을 사거리 안에 두는 무기체계의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한강 이남으로 옮겨가도 여전히 쫓아가서 때릴 수 있다’는 의지의 과시가 초점이었다.

120km를 날아가는 300mm 방사포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계산의 산물이다. 2007년 시험발사에 성공한 사거리 120km의 KN-02 신형 단거리 미사일 개발도 같은 맥락이다. 평양은 2007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퍼레이드 당시 이 미사일을 선두에 세운 바 있다. 그해 7월 2일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공개석상에서 이 미사일의 위협을 공개적으로 거론할 정도로 미국 측이 느낀 위기의식은 컸고, 결국 미군 측은 지난해 들어 2사단에서 운용하는 다연장로켓(MLRS) 30여 문 등 주요 포병전력의 한강 이북 잔류를 검토하기에 이른다. 열병식을 통해 주고받은 수 싸움이 한반도의 군사대비태세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 사례다.

이렇듯 따지고 보면 열병식을 통한 북한의 무기체계 과시는 군사전력의 문제라기보다 국제정치 문제에 가깝다. 실제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를 통해 상대 행동을 제어하려는 시도다. 거꾸로 이러한 무기체계가 현실화된 위협인지 아니면 실체가 없는 속임수인지를 따져보는 작업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되기도 한다.

이전 열병식에서 공개된 중거리 미사일의 성능을 두고 한국과 미국의 안보당국과 전문가 사이에 다양한 이견이 불거진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새로운 무기체계가 등장할 때마다 이를 신형 무기도입 사업의 명분으로 연결해온 한국군의 처지와,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를 꺼리는 미국 측 견해가 엇갈려온 것. 앞으로도 반복될 북한군 열병식을 한층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두뇌게임은 본질적으로 인식에 관한 싸움이고, 해석에 관한 싸움이며, 이해관계에 대한 싸움이라는 뜻이다.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3년 8월 13일자 8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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