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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당신에게 비싼 가게" 오프라 윈프리와 명품매장의 악연

입력 | 2013-08-11 18:20:00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와 명품의 질기고 질긴 악연

'토크쇼의 여왕'이자 세계적 여성 갑부인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최근 스위스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털어놔 파문이 일고 있다. 윈프리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3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재산도 27억 달러(약 3조118억 원)에 이르는 세계적 명사다.

지난달 미국의 전설적 여가수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티나 터너의 결혼식 참석차 스위스 취리히를 방문했던 윈프리는 한 명품 매장의 여종업원에게 모욕당한 사실을 털어놨다고 BBC 등 주요 외신이 10일 보도했다.

오프리가 사려했던 제니퍼 백 동아일보 DB

당시 윈프리는 프랑스어로 '세 개의 사과(Trois Pommes)'를 뜻하는 '트와 폼므'라는 이 매장에서 이탈리아 출신 여종업원에게 미국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의 3만5000달러(약 3900만 원)짜리 가방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애니스턴이 즐겨 착용해 '제니퍼 백'으로도 불리는 이 가방은 500만~1000만 원대인 일반적인 톰 포드 가방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윈프리를 알아보지 못한 종업원은 "여기는 당신에게 너무 비싼 가게"라며 제품을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세계적 명사이자 부호인 윈프리를 알아보지 못한 점원이 단순히 그가 흑인이라는 인종편견에 사로잡혀 돈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문전박대한 셈이다. 윈프리는 "나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조용히 가게를 나왔다"며 "나의 경험이야말로 스위스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개탄했다.

이번 사건은 스위스의 망명신청자 관리 강화조치와 맞물려 더 큰 파문을 낳고 있다. 아프리카계 난민의 유입 증가에 골머리를 앓던 스위스 정부는 올해 6월 사회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 아래 과거 군대막사를 개조한 수용시설에 망명 신청자를 격리하기로 했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수영장, 도서관, 놀이터, 교회 등 공공시설 대부분을 이용할 수 없어 '현대판 노예수용소'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스위스 관광청과 가게 주인은 윈프리에게 사과했다. 스위스 관광청의 다니엘라 바에르 대변인은 "스위스를 찾는 방문객은 모두 정중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은 "이탈리아인 종업원이 영어를 할 줄 알지만 모국어가 아닌 만큼 매우 능숙하지는 않다"며 "그래서 이런 오해가 빚어졌다"고 군색하게 변명했다.

이번 사건이 더욱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윈프리와 명품 매장의 악연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윈프리는 8년 전인 2005년에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매장에서 냉대를 당한 적이 있다.

2005년 6월 14일 업무 차 프랑스 수도 파리를 찾았던 윈프리와 그의 친구들은 파리의 한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다. 당시 윈프리는 맨 얼굴에 머리 손질도 하지 않은 수수한 차림이었다.

에르메스 매장의 영업 마감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지만 에르메스는 물론이고 샤넬,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들은 세계적 유명인사들에게 마감 시간 이후에도 관례적으로 쇼핑을 허락하곤 한다. 실제 그 시간에도 해당 매장에서는 일부 고객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장 직원은 수수한 차림새를 한 흑인 중년여성을 막아섰다. 윈프리 측이 항의했으나 매장의 지배인까지 합세해 윈프리를 돌려보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 언론들은 인종차별이 이런 상황을 야기했다고 에르메스를 질타했다. 뉴욕포스트는 "해당 매장이 최근 흑인 여성과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던 적이 있어 흑인인 윈프리의 입장을 막은 것"이라며 인종차별을 문제 삼았다.

파문이 커지자 에르메스는 사건 발생 8일 뒤인 같은 달 22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에르메스의 사장이 직접 윈프리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해명했으며 매장을 다시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윈프리는 "내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셀린 디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처럼 백인 유명 인사였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이고 해당 매장이 새벽에라도 기꺼이 문을 열었을 것"이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당시 윈프리와 동행했던 그의 친구 게일 킹도 "이는 윈프리의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웠던 순간"이라며 "다시 그곳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윈프리는 이번 스위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티나 터너의 생일선물로 줄 시계를 구입하기 위해 에르메스 매장을 찾았다. 사태가 발생하기 전 윈프리는 1개당 6000달러가 넘는 고가의 핸드백을 수십 개 주문했으나 사건 이후 모든 주문을 취소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명품 매장의 인종 차별도 문제지만 유명 연예인의 특권 의식 또한 마찬가지로 고까운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런 지적이 상당 부분 일리가 있지만 3조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닌 세계적인 유명 인사라 해도 피부색의 편견 앞에서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함을 남긴다.


하정민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