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기자는 자민당이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것은 국민들이 아베 노선에 찬성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H는 자민당이 투표율 52.6%의 선거에서 34.7% 득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 10명 중 2명의 지지도 끌어내지 못한 승리였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로 경제 문제에 희망을 제시했기 때문에 1당으로 인정해 준 것이지 좌충우돌식 대외 정책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건 아니라고도 했다.
한중일 3국 외교는 일방적인 힘의 쏠림을 허락하지 않는 구조다.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는 한중이 일본과 대립하고, 북한 문제에서는 한일이 중국과 맞서 왔다. 2010년 천안함 국면에서 그나마 한국이 중국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함께 일본이 뒤를 받쳐줬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최근 북핵 대처 과정에서 한일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이를 근본적 변화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국으로서는 중국도 필요하지만 일본도 절대 내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지금 한일 관계는 긴장과 대립을 넘어서 과잉 마찰과 파탄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아베 정권의 우경화 폭주가 계속되는 한 국민정서를 감안해서라도 일본에 선뜻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중 대 일본 구도가 장기화되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형세다. 현재 중-일 갈등의 근저에는 청일전쟁 이후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일본에 동아시아 헤게모니를 내놓은 중국이 100여 년 만에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뜻이 깔려 있다. 이는 정치체제와 사회구조가 주변국과 다른 나라가 이 지역의 규칙 제정자(rule-setter)로 등극함을 의미한다. 일본이 군국주의적 퇴행을 보여줬다면 중국은 무례하고 일방적인 힘의 외교를 보여줬다. 한국은 이런 중국과 호흡을 맞춰 살아가야 할 테지만 주변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해야 할 상황에도 처하게 될 것이다. 이때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우리 이익을 생각한다면 나중을 고려하지 않은 채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마냥 패대기치는 게 합당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당장 정부 간 교류가 어렵다면 일본 내 진보그룹과의 소통이라도 늘려야 한다. 지난주 동아일보가 연재한 ‘일본의 양심세력’은 한일 간 접점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민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은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늦으면 안 된다.
그날 H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스시집에서 삭힌 홍어를 처음 맛봤다. 한 손으로는 코를 잡아 쥔 채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며 엄지를 세웠다. 아직 한일 간에는 서로를 잡아끌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