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중점 정책은 서비스 규제개혁… 리더십 발휘하겠다”
현오석 부총리는 하반기 핵심 과제로 서비스 활성화를 꼽았다. 그가 대통령의 재신임을 통해 확보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익집단의 저항을 돌파하고 서비스 규제 혁파를 이뤄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현 부총리는 최근 1박 2일로 지방 산업 현장을 돌아본 후 “나도 안경을 닦아야겠다”고 말했다. “안경을 닦고 보라”는 말을 자신에게 되돌린 셈. 8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하반기 경제 운용 방안과 리더십 논란 등에 대해 물어봤다.
정책 성과 없으면 책임지는 건 당연
“세 가지다. 첫째, 현장 확인의 필요성이다. 정부가 1주일 내에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을 경우 공무원들은 1주일 이내라면 언제 결정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인은 하루가 급한 경우가 많다. 안 가 보면 현장이 얼마나 절박한지 모른다. 둘째, 정책은 밑에서 위로 발굴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제(7일) (민간이 참석하는) 경제민생활성화대책 1차 회의를 열었는데, 취지는 정책 수혜자인 현장의 얘기를 더 듣고 싶어서였다. 셋째, 기업이나 국민의 처지에서 정부 부처 구분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떤 서비스를 받느냐가 문제다.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하는 게 중요하다. 기재부 공무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서비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내 안경을 닦겠다’는 것은 현장에 가 보니 배워야 할 것이 많더라는 뜻이다. 하하.”
―지난번 ‘투자한 기업인 업어 주기’ 이벤트가 화제가 됐다. 누구 아이디어였나. 두 번 업었다던데….
“가서 (내가) 즉석에서 한 거다. (카메라 기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그냥 업었더니 일부가 촬영을 못 했다며 한 번 더 해 달라고 해서…. 어려울 때 투자하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니까. 사람이 아니라 기업을 업었다고 봐 달라.”
―부총리의 리더십 논란이 왜 나왔다고 보나.
―이번에는 대통령이 재신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로 볼 때 ‘리더십 논란’이 재발하면 현 경제팀이 유지되기 힘들 것 같은데….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었는데, (주변에서) 그렇게(재신임이라고) 해석한 거지. 정책 당국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성과다. 성과가 없으면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경기침체 극복도 중요하지만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정말 큰일이다.
“저성장 구조를 자르려면 과거 캐치 업(따라잡기) 전략에서 선도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학기술과 상상력 창의력의 융합이 필요하다. 이를 창조경제라고 부른 건데….”
“(웃음) 방금 융합 얘기를 했는데 융합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비스다.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엔트리(진입 규제)를 강조하고…. 물론 이게 가장 중요하다. 어떤 분은 인재 수급을, 또 어떤 분은 투자 재원을 얘기한다. 이를 포괄하는 전략 구상이 필요하다. 또 서비스는 너무 광범위하고 복잡해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1단계 대책(7월 4일 발표)에서는 추진 목표와 원칙, 서비스산업 전반에 걸친 인프라 등을 제시했다. 현재 기재부 내에 국장이 이끄는 전담 태스크포스 조직이 가동되고 있다. 하반기 과제는 두 가지로 잡고 있다. 하나는 경제 회복이고, 두 번째는 서비스산업에 대한 확실한 방향 제시다.”
2, 3단계 서비스 활성화 대책 곧 발표
―그럼 여름휴가철이 지나면 2단계 서비스 대책이 나오나.
“조속한 시일 내에. 2, 3단계 대책으로 나뉘며 투자활성화 대책처럼 연이어 발표할 것이다. 2단계는 의료 및 관광 분야다. 그러나 발표만 하고 실행이 늦어지면 안 된다. 예컨대 경제자유구역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허용돼 있지만 아직 설립은 안 되고 있다. 뭘 할지에 대해 실마리를 잡았고 현재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3단계는 어떤 분야인가.
“사업서비스(법률 회계 컨설팅 설계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등 나머지 다다. 넓다.”
―서비스 규제 혁파에서 가장 큰 장애는 기득권 집단의 저항이다. 정치권과 담당 장관까지 반대한다. 돌파하려면 대통령의 직접적 지원이 있어야 할 텐데, 대통령께 말씀드린 적 있는가.
“아까 얘기했지만 지금은 부처 간 협업에 대한 공감이 높다. 대통령께 말씀드렸고, 나는 같은 생각이라고 본다. ‘제조업과의 차별 폐지’ 등 큰 전략을 밝힌 1단계 발표 당시 일부에서 ‘왜 이렇게 더디냐’고 비판하던데 먼저 방향을 확실히 잡으려 한 것이다. 무엇보다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 언론이 도와 달라.”
지금까지 그의 발언을 종합하면 ‘지금까지와 달리 하반기에는 서비스 규제 혁파 등 부처 간 이견이 노출될 수 있고, 집행상황을 챙겨야 할 주제가 많은 만큼 앞으로 분명한 리더십을 행사하겠다’는 의미였다.
―기대해 보겠다. 그런데 서비스 중에서 금융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안정, 실물경제 뒷받침 쪽으로 정책의 무게추가 옮겨졌다. 이로 인해 금융 자체를 미래성장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진취성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많다.
“뭐든지 흐름이 있다. 2008년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정책의 방향이 선회했다. 안정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줄이는 쪽이다. 한국의 경우 아직 금융산업이 충분히 크지 못한 상황에서 안정을 택해야 하니 딜레마가 있다. 둘을 병행해야 한다. 규제 중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규제는 유지하겠지만) 금융의 산업적 발전을 막는 규제는 더 풀어야 한다. 관련된 또 하나의 포인트는 정책금융을 통한 경제안정성 확대다. 평상시에는 정책금융의 역할이 잘 보이지 않지만 조선(造船) 등 특정 산업의 위기 시에는 필요하다. 금융시장 안정, 금융산업 육성, 시스템 쇼크 대비 등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통과된 경제민주화 법안 과도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산업은행(KDB) 얘기로 넘어가게 됐다. 지난 정부 때 정책금융공사를 산업은행에서 분리시켰다. 재통합할 것인가.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고 본다. 금융위원회가 가까운 시일 내에 결론 내릴 것이다. 평시 산업은행을 상업은행(commercial bank)처럼 운영하다가 위기 시엔 정책금융을 하라고 하면 여러 가지 논란이 생긴다. 왜 (평시에) 민간 은행을 구축(驅逐·쫓아냄)하는가, 상업은행이라면서 (위기 시에) 정책금융을 하는 근거는 뭔가, 산은과 공사가 유사한 기능을 한다면 불필요한 분리에 따른 비효율은 어찌 하나…. 이런 문제들을 정리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정리’란 재통합을 의미한다.
역사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낙관주의자
―‘투자 활성화냐 경제민주화냐, 부총리의 속마음을 모르겠다’는 말이 있다.
“경제민주화는 규제가 아니라 규칙이다. 경제민주화의 바탕 위에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어떤 게임이든 규칙의 틀 위에서 하는 것이니까. 뛰지도 못하게 규칙을 만들면 안 되지만 통과된 7개 법안은 국정과제에 포함된 수준이며, 오버슈트되지(과도하지) 않은 내용이다. 정부가 당초 생각한 정도다. 아직 계류 중인 사안도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틀은 갖춰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요즘 전세금이 치솟는다고 난리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통계로 얘기해야지 ‘김 서방네 전세가 얼마 올랐다’며 정책을 펼 수는 없다. 갑자기 오른 게 아니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2.1% 올랐다. 그런데 왜 많이 올랐다고 느낄까. 전세 계약이 2년 주기로 갱신된다. 만 2년간의 누계로 많이 오른 곳은 15∼36%까지 올랐다(전국 평균은 7.6%). 집값 상승 기대가 사라져 전세 수요가 늘어난 반면, 금리가 낮아 (공급이) 월세로 옮겨 가면서 물량이 없어 오른 거다. 행복도시 이전에 따라 세종시 인근이 특히 많이 올랐다.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주택 매매 활성화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단기 대책으로는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사서 전세 놓는 방안 등도 마련했다. 9월부터 시행한다.”
―미국 디트로이트 시가 파산했지만 우리도 지방재정 운영이 매우 방만하다. 통제 필요성을 못 느끼나.
“지방채를 발행할 때 안전행정부와의 사전 협의 절차가 있다. (그러나) 지방 세출 문제는 지방의회 등을 통해 지자체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내년 3월까지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 맞춰 공공부채를 발표해야 한다. 여기엔 정부뿐 아니라 공기업 부채도 포함된다. 이를 통해 지방세출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유도할 것이다.”
―정책 수용자인 국민과 기업에 할 말이 있다면….
“경제가 일단 회복세로 돌아섰다. 왜 추경(추가경정예산) 등 화끈하게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대외 여건이 만만치 않다. 모든 정책 수단을 다 써 버리고 나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할 카드가 없어진다. 당국자는 이를 염두에 두고 ‘정책의 여유’를 남겨 둬야 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염려가 많다. 세상사에는 비관주의자가 옳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옳음을 넘어)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낙관주의자다.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와 관련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