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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속않고 하이패스 ‘쓩’… 방호벽에 ‘쿵’ 다른 차와 ‘쾅’

입력 | 2013-08-12 03:00:00

[시동 꺼! 반칙운전]<5·끝>반칙 난무하는 고속도 요금소




5일 오후 승합차 한 대가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서울 방향 16번 하이패스 게이트를 빠른 속도로 통과하고 있다. 제한속도인 시속 30km를 알리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제한속도를 지킨 차량은 10대 중 1대에 불과했다. 이날 취재팀이 스피드건을 들고 속도를 측정한 모습을 합성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회색 스타렉스 승합차가 좁은 하이패스 차로를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들고 있던 스피드건에 ‘88km’라고 속도가 찍혔다. 만약 경찰에 단속됐다면 제한속도(시속 30km)를 시속 40km 이상 초과해 벌점 30점에 범칙금 10만 원을 물어야 하는 중대한 법규 위반이다.

○ 10대 중 9대 속도위반

월요일인 5일 오후 1시 반부터 1시간 동안 취재팀은 서울요금소 서울 방향 16번 요금소 부스 안에서 스피드건을 들고 하이패스 차로 이용 차량들의 통과 속도를 측정했다. 경찰청 고시에 따르면 요금소 이용 차량은 서서히 속도를 줄여 50m 앞에서 제한속도인 시속 30km까지 감속해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차량은 드물었다. 현재 고속도로 이용자의 58.1%가 하이패스를 이용할 만큼 보편화됐지만 이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의 안전 의식은 뒷걸음치고 있는 것.

이날 취재팀이 지켜본 통행차량 511대 중 제한속도를 넘긴 차량이 467대(91.4%)였다. 시속 80km 이상으로 요금소를 통과한 차량도 5대였다. 통행 차량의 평균 속도는 시속 48km였다. 한국도로공사가 같은 장소에서 7월 23일부터 1주일간 통행 차량 93만3945대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도 비슷했다. 제한속도를 지킨 차량은 6만9136대(7.4%)뿐이었다.

요금소 바로 앞에서 차로를 바꾸는 운전자들 때문에 다른 차량이 급제동하는 아찔한 장면도 포착됐다. 조금이라도 줄이 짧거나 정체가 덜한 차로로 끼어들려는 일부 운전자의 ‘반칙운전’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편도 5차로가 상하행선 각각 12차로와 20차로로 넓어졌다가 다시 5차로로 좁아지는 서울요금소 합류 지점에서는 서로 양보를 하지 않다가 차량끼리 뒤엉켜 급제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요금소를 통과한 뒤 갓길에 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거나 하이패스 요금 미납 시 전광판에 뜨는 미납 요금을 곧바로 내기 위해 요금소 광장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도로를 횡단하는 운전자도 5분에 1명꼴로 발견할 수 있었다.

○ 과속과 급차로 변경 빈발

고속도로 요금소는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2010∼2012년 3년간 전국 354개 요금소에서 교통사고 633건이 발생해 34명이 죽고 1204명이 다쳤다. 취재팀이 이 중 통행량이 가장 많은 요금소 상위 10곳에서 발생한 사고 138건을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급격한 차로 변경과 과속 통과가 요금소 사고를 유발하는 가장 심각한 반칙운전 행태였다.

3년간 요금소 통과 전후 차로를 변경하다가 발생한 사고는 138건 중 48건(34.8%)이었다.

지난해 12월 제2경인고속도로 남인천요금소에서는 안양 방향으로 진입하던 화물차 운전자 A 씨(47)가 차로를 지그재그로 변경하다가 앞서 가던 승합차를 들이받았다.

과속 통과 역시 주된 사고 요인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9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요금소에서 판교 방향으로 승용차를 몰던 B 씨(64)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하이패스 요금소를 통과하다가 방호벽을 들이받은 뒤 앞유리 쪽으로 튕겨나가 사망했다. 이처럼 좁은 차로를 높은 속도로 통과하다가 요금소 구조물이나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사고도 3년간 138건 중 47건(34.1%)이었다.

요금소 직전에서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차량 때문에 발생하는 추돌사고도 많다. 통행량 상위 요금소 10곳에서 2010∼2012년 3년간 발생한 사고 138건 중 23건이 요금소 앞 급감속 차량을 뒤에서 들이받은 유형이었다.

요금소 인근 도로를 걸어가다 차에 치이는 사고는 11건(8%)이었다. 안세열 한국도로공사 차장은 “하이패스 단말기에 잔액이 부족해 ‘요금이 정상 처리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나오더라도 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우지 말고 추후 온라인으로 납부하는 것이 안전하다. 3개월 내에만 내면 온라인 납부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고 말했다.

○ 과속 단속 카메라 ‘0개’

경찰과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현재 고속도로 요금소들에는 고정식 과속 단속 카메라가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다. 한 대에 2000만 원에 이르는 단속 카메라를 새로 설치할 예산이 없다는 이유다. 차량통행이 집중하는 요금소 부근에서 단속 사실을 안 차량이 급제동할 경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동식 카메라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경찰의 단속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는 도로공사가 요금소 하이패스 차로에 설치한 속도감지기를 경찰의 단속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법이 제시된다. 현재 도로공사가 요금소 노면 감지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통행차량의 속도를 단속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과속과 급한 차로 변경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요금소 진입 50m 전’으로만 정해져 있는 감속 의무 구간을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입 1km 전부터는 시속 80km’, ‘500m 전부터는 시속 60km’ 등으로 서서히 차량 속도를 줄이도록 규정하고 이를 단속하면 요금소 바로 앞에서 속도를 급히 줄이다가 발생하는 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요금소를 통과한 뒤에도 일정 구간 내에서는 제한속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현재는 요금소를 통과한 직후 해당 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80∼110km까지 곧장 속도를 높여도 처벌 규정이 없다.

조건희·황인찬 기자 becom@donga.com   
박형윤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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