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표 받아놓고 쟁탈전… 물건 나오면 반나절만에 거래끝■ 비수기속 이상과열 전세시장 가보니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인근 중개업소에 월세 매물을 알리는 시세표만 잔뜩 붙어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보증금 1억 원에 월 250만 원인 109m²짜리가 하나 있었는데 어제 오후 8시 반에 계약이 됐답니다. 아주 그냥 초스피드로 나가네요.”
이 사장은 “전세는 씨가 말랐고, 월세도 나오는 즉시 계약”이라며 “지금 중개업소마다 대기자가 20∼30명은 된다”라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동의 5678채 규모 대단지 아파트인 ‘엘스’ 앞의 중개업소 20여 곳에도 전세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졌지만 대부분 허탕을 쳤다. “전세 좀 알아보려고 왔는데요”라는 고객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개업소 사장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셋집이 품귀 현상을 보이면서 전세금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전월 대비 전국 평균 전세금 상승률은 올 5월 0.19%, 6월 0.23%, 7월 0.37% 등으로 계속 뜀박질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파크푸르지오 아파트(전용 84m²) 전세금은 지난해 8월 2억9000만 원에서 현재 4억 원으로 1년 새 1억 원 넘게(38%) 올랐다.
전세금 상승으로 7월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은 57.3%로 6월보다 0.6%포인트 높아졌다. 서울 강남지역은 전세금이 매매가의 80%에 육박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경기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과 광주 광산구 월계동에서는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전세금이 매매가를 추월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수요자들은 주택을 보유하는 것보다 세를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6억∼7억 원 현금을 쥐고도 전세시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전세금이 오르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이를 보전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증가한 것도 전세금 급등의 요인이다.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맡겨 봐야 연 2.6% 정도밖에 안 되지만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수익률이 적어도 연 6%는 되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주택임대 시장의 축이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불안’이 최근 전세난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주택임대 시장에서 전세 비중은 1980년 60.7%에서 2010년 50.3%로 10.4%포인트 감소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세는 세계적으로 우리만 유일하게 갖고 있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라며 “전세시장의 축소 및 소멸은 자연스러운 흐름인 만큼 전세 제도 유지에 매달리기보다 월세 소득공제와 같이 월세 세입자의 부담을 더는 정책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훈·장윤정 기자 jefflee@donga.com
정윤아 인턴기자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