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구하기 별따기… 매물 품귀가 낳은 기막힌 ‘묻지마 계약’
11월 결혼을 앞둔 회사원 김모 씨(33)는 6월 중순부터 서울 강동구 둔촌동 중개업소를 모조리 누볐지만 허탕을 쳤다. 85m²짜리 아파트 전세 매물이 나오면 바로 연락해 달라고 중개업소에 신신당부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다급해하는 김 씨에게 중개업소 측은 “넋 놓고 있다가는 전셋집 다 놓친다”며 “계약금을 맡겨 놓는 손님이 많으니 당신도 계약서와 위임장을 써 달라”고 했다. 김 씨는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집을 안 봐도 무조건 계약하기로 하고, 가계약금 500만 원과 중개수수료 30만 원을 선불로 중개업소에 보냈다.
김 씨는 이렇게 한 뒤에야 겨우 신혼집을 구했다. 그는 “집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약해 불안하기는 하지만 사정이 다급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면서 “계약금과 수고비까지 미리 줘야 전셋집을 구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힌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주택거래가 사상 최악의 침체에 빠진 가운데 전세 공급이 줄고 전세금이 폭등하면서 서민경제의 주름살이 커지고 있다.
전세금은 하루가 다르게 뜀박질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지역 전세금은 지난주까지 51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 갔다. 지난달 서울의 주택 전세금은 6월보다 0.52% 올라 2011년 10월(0.86%)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 중순과 올 7월 중순을 비교하면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0.9% 내린 반면 평균 전세금은 28.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매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한 전세 수요가 줄어들 수 없다”며 “올 하반기 아파트 입주 물량도 예년보다 적어 당분간 전세금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정임수·장윤정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