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호랑이를 부탁해!’ ★★★☆
연극 ‘호랑이를 부탁해!’ LAS 제공
‘호랑이를 부탁해!’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년)를 차용한 제목에 ‘캣 피플’과 유사한 설정을 얹은 연극이다. 호랑이 유전자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호랑이 인간’과 삼류 건달의 사랑. 문장으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로 허무맹랑한 내용이다.
밑그림이 시원찮으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둘 다른 요소를 스토리 외곽에서 찾기 쉽다. ‘캣 피플’은 킨스키의 두 차례 짤막한 베드신을 미끼로 삼았다. 수입 배급 과정에서의 무도한 가위질 탓도 적잖았겠지만 호기심에 달떠 숨어서 본 그 영화는 결국 그저 길고 지루했다.
‘저렇게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고…. 웃기고 있다 정말.’
집안에서 강요하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계약을 맺고 가짜 연인 행세를 하다가 정분이 나는 흐름도 예상을 한 치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심드렁하게 지켜보던 중 귀에 꽂히는 대사들이 마음속에 슬쩍슬쩍 뜨끔한 공명을 일으킨다.
“호랑이면 어때요. 내가 상관없다는데. 당신은 당신이잖아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드러냈을 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이, 부모님 외에 세상에 몇이나 더 있을까. 살아오며 지어냈던 사랑 이야기가 처음부터 ‘말 되는 이야기’였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생판 모르던 사람과 만나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원래 말도 안 되는 일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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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쁨 작·연출, 9월 1일까지 서울 혜화동 키작은소나무극장. 2만5000원. 070-8154-9944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