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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통한 세수 증대 ‘정공법’ 대신 ‘증세 계산서’ 국민에 떠넘기다 禍 불러”

입력 | 2013-08-13 03:00:00

[세제개편안 재검토]전문가들 “예고된 저항”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서민·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증세(增稅) 없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모순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5년간 135조 원에 달하는 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통한 자연스러운 세수(稅收) 증대가 바람직한 방법인데도, 정부가 무리하게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에서 해법을 찾다가 일련의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경제의 파이를 키워 세수를 확보하는 정공법을 버리고 이삭을 줍는 데만 집중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증세 없이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공언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업이 투자에 나서도록 길을 열어주고 부자들이 소비를 늘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경제 민주화’로 일컬어지는 정책들이 오히려 찬물을 끼얹었다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이제라도 복지에는 증세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발이라도 진전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복지정책과 재원 마련 대책을 별개의 문제로 접근하다 문제를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복지에 필요한 재원 규모를 소상히 밝히고 이를 어디에서 충당할지 따졌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한 탓에 ‘계산서’를 받아든 국민의 공분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경제학)는 “세제개편안을 낼 때 추가로 걷는 세금은 어디에 얼마나 쓸지, 중산층 이상으로부터 걷는 세금은 빈곤층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 등을 명확히 설명했어야 했다”며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더 내라고 부탁한 건 국민의 비판을 자초한 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증세를 너무 터부시하다 화를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 비과세·감면 축소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게 국민의 저항을 불러왔다고 본 것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세율 인상, 세목(稅目) 신설 등 직접적 세금 인상만을 증세로 보고 비과세·감면 축소는 정상적인 수단으로 다룬 측면이 있다”며 “이론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국민 정서만 놓고 보면 결국 둘 다 모두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증세는 없다’고 안심한 국민들로서는 막상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언급한 만큼 일부 중산층의 세 부담은 당초 정부안만큼 늘어나지는 않게 됐다. 이는 곧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한 세수 확대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 교수는 “증세 없는 복지는 성립할 수 없고, 복지를 확대하려면 누군가가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남유럽처럼 국채를 발행해 복지에 충당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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