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스스로 정치 문외한(門外漢)이라고 하지만 박 수석은 자의 반 타의 반 정치와 상당한 인연을 맺었다. 그 인연 중에는 악연(惡緣)이 더 많은 듯하지만.
박 수석은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를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로 있던 그는 김성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신각수 차관 후임으로 제1차관에 내정됐다는 통보였다. 박 수석은 관례에 따라 주재국 정부에 알리고 외교사절들을 불러 이임 리셉션을 했다. 일부 대사들은 차관 영전 파티까지 열어줬다.
올해 4월 주중대사를 고를 때 외교부는 박준우 수석을 단수 추천했다. 외무고시로는 두 해 선배지만 서울대 법대 72학번 동기인 윤병세 장관이 직접 귀띔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승자는 정치인인 권영세 전 의원. 주중 대사에 중량감 있는 정치인을 낙점한 것은 전적으로 인사권자의 권리겠지만 박 수석에겐 또 하나의 씁쓸한 추억이 됐다.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정치의 힘을 절감했을까. 아니면 한(恨)이 맺혔을까. 박 수석이 주중대사, 권 대사가 정무수석이 됐다면 두 사람 모두,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정치의 희생자였을지도 모를 그를 정무수석에 기용한 것은 만기친람(萬機親覽)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심모원려(深謀遠慮)였을까. 아니면 야권이 주장하는 대로 ‘오만의 흔적’일까. 네 번이나 정무수석 자리를 고사(固辭)했다는 박 수석에게 임명장을 준 박 대통령은 ‘선진 정치문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알 듯 모를 듯한 주문이다. 박 수석 혼자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의문이다.
기우(杞憂)일 수도 있지만 정치에 대해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가진 박 수석이 현재의 정치문화를 개조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비정상의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국정조사 증인 채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장외투쟁에 나선 야당이 국제수준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무수석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매끄러운 대야(對野)관계다.
박 수석은 사석에서 “부대끼면서 일해야 하는데 여의도 관행이나 스타일이 내가 해온 것과 다른 부분이 많다.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숙제”라며 고민의 일단을 털어놨다. 유럽의 고성(古城)을 찾아다니며 와인을 즐겼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박 수석은 ‘폭탄주’가 횡행하는 여의도 정치에 익사(溺死)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