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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하태원]박준우 인사실험

입력 | 2013-08-13 03:00:00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박준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발탁은 여러모로 드라마틱했다. 두 달 장고(長考) 끝에 30년 이상 직업 외교관의 외길을 걸은 그를 선택한 것은 파격이었다. 못해도 외교부 차관은 할 것으로 보였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물을 먹은’ 엘리트 외교관의 컴백이란 흥미로운 요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장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공통점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잘나가다가 이명박(MB) 정부 때 인사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정치 문외한(門外漢)이라고 하지만 박 수석은 자의 반 타의 반 정치와 상당한 인연을 맺었다. 그 인연 중에는 악연(惡緣)이 더 많은 듯하지만.

박 수석은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를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로 있던 그는 김성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신각수 차관 후임으로 제1차관에 내정됐다는 통보였다. 박 수석은 관례에 따라 주재국 정부에 알리고 외교사절들을 불러 이임 리셉션을 했다. 일부 대사들은 차관 영전 파티까지 열어줬다.

박 수석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철석같이 믿었던 장관의 ‘천기누설’은 없던 일이 됐고 1차관 자리는 박석환 전 주(駐)영국 대사에게 돌아갔다. 박 대사와 동문수학한 여당 권력실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김 장관을 원망하기보다는 ‘그놈의 정치’에 발목을 잡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 4월 주중대사를 고를 때 외교부는 박준우 수석을 단수 추천했다. 외무고시로는 두 해 선배지만 서울대 법대 72학번 동기인 윤병세 장관이 직접 귀띔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승자는 정치인인 권영세 전 의원. 주중 대사에 중량감 있는 정치인을 낙점한 것은 전적으로 인사권자의 권리겠지만 박 수석에겐 또 하나의 씁쓸한 추억이 됐다.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정치의 힘을 절감했을까. 아니면 한(恨)이 맺혔을까. 박 수석이 주중대사, 권 대사가 정무수석이 됐다면 두 사람 모두,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정치의 희생자였을지도 모를 그를 정무수석에 기용한 것은 만기친람(萬機親覽)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심모원려(深謀遠慮)였을까. 아니면 야권이 주장하는 대로 ‘오만의 흔적’일까. 네 번이나 정무수석 자리를 고사(固辭)했다는 박 수석에게 임명장을 준 박 대통령은 ‘선진 정치문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알 듯 모를 듯한 주문이다. 박 수석 혼자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의문이다.

기우(杞憂)일 수도 있지만 정치에 대해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가진 박 수석이 현재의 정치문화를 개조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비정상의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생각을 가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국정조사 증인 채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장외투쟁에 나선 야당이 국제수준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무수석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매끄러운 대야(對野)관계다.

박 수석은 사석에서 “부대끼면서 일해야 하는데 여의도 관행이나 스타일이 내가 해온 것과 다른 부분이 많다.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숙제”라며 고민의 일단을 털어놨다. 유럽의 고성(古城)을 찾아다니며 와인을 즐겼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박 수석은 ‘폭탄주’가 횡행하는 여의도 정치에 익사(溺死)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박 수석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 중 누구도 그가 괴력의 삼손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선배 정무수석들은 박 수석에게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것이 정치라는 진리를 깨닫고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수석에게는 어쩌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세상이 그의 시행착오를 얼마나 참아 줄지는 모르겠지만.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