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안 후폭풍/동아일보의 제언]야권, 정권 흔들 기회로 악용말고 국민도 포퓰리즘 단맛 벗어나야
박근혜 정부 경제팀의 한 해 최대 노작(勞作)이라 할 수 있는 세제개편안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결국 발표 닷새 만에 수정됐다. 사상 초유의 사태다. 일단은 숫자에만 밝았지 국민감정을 읽는 데는 어두웠던 경제팀과 참모들에게 책임론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공약에 지나치게 집착한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이번 사태의 근원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선후보 시절 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고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이런 사달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많은 경제·재정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집권을 한 후에는 결국 증세 논의를 시작하거나 공약 우선순위를 일부 조정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장 당선을 위해 유권자의 마음에 호소해야 하는 후보와 정부 총책임자로서 나라사정의 ‘민낯’을 냉철하게 접할 수 있는 대통령은 국정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이니 지키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는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졌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 이행에 필요하다고 밝힌 돈의 액수 134조8000억 원은 그대로 ‘공약가계부’에 실렸다. ‘고용률 70%’가 지난 정부의 ‘7-4-7’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일자 향후 5년간의 정책 로드맵을 집대성해서 보여줬고, 지역공약사업은 “경제성만으로 판단하지는 않겠다”며 아예 못을 박았다.
이는 무슨 일을 시켜도 항상 논리와 수치를 만들어내는 ‘선수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임기 내 140개 국정과제의 추진 방안과 재원조달 계획을 빽빽하게 담은 공약가계부는 누가 봐도 전문 관료집단이 아니면 흉내조차 내기 힘든 정책보고서의 백미(白眉)였다. 이번 세제개편안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어려운 숙제에 대해 그나마 최선의 답안지를 낸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선택한 관료들은 시키는 걸 만들어오는 것에만 능했을 뿐 “이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강직한 공직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야당인 민주당 역시 이번 사태를 ‘정권 흔들기’의 기회로 악용하지 말고 바람직한 국가 장래의 모습에 대해 정부 여당과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주장하는 증세 방안들은 국가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거나 세수 증대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복지 확대에는 증세가 수반된다는 점을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여전히 ‘복지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이를 끊임없이 원하는 유권자의 책임도 있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