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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황금열쇠

입력 | 2013-08-15 03:00:00


왕따인 고등학생이 있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다. 고3 새 학기가 되자 그 학생이 음악선생님에게 찾아와 머뭇거리더니 점심시간에 음악실에 들어가서 피아노를 치면 안 되겠냐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혼자 피아노를 치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말없이 음악실 열쇠를 하나 복사해 주었다. 음악실은 왕따인 그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피난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그 학생은 틈틈이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며 혼자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힘든 고3 시절을 보내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후 그 학생과 엄마가 학교로 찾아왔다.

“선생님께서 저의 아이에게 음악실 열쇠를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학교생활을 잘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했을 테고요. 이 열쇠는 제 아이의 인생을 활짝 열어준 귀한 열쇠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에게 문을 열어주시리라 믿어요. 감사합니다.”

학생의 엄마는 열쇠를 돌려드린다며 작은 상자를 놓고 돌아갔다. 무심코 상자를 열어본 음악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상자 안에는 학생에게 복사해준 음악실 열쇠와 함께 작은 황금열쇠가 들어 있었다. 단체생활의 규칙을 내세우며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라는 상투적인 훈계 대신 선뜻 열쇠를 내준 선생님이나 선생님의 뜻을 귀하게 기념하고 싶어 황금열쇠를 선물한 엄마의 마음이 순도 99.9%로 느껴졌다.

가깝게 지내는 사진가 구본창 씨는 어려서부터 밖에서 놀기보다 누나들이 바느질하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고, 예쁜 엽서나 잡동사니들을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고 했다. 어른들은 조용한 성격인 그에게 밖에서 뛰어놀라고 눈총을 주었다. 학창시절을 지내고 대기업에 입사하자 이번에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고 술을 안 좋아해서 퇴근 후 회식 자리가 고역이었다. 마침내 획일적인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그는 독일 주재원을 자원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결국 사표를 내고 디자인 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흉잡히던 일들이 독일 학교에서는 모두 칭찬거리가 되었어요. 소극적이라는 핀잔 대신 섬세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칭찬이 돌아왔어요.”

그런 칭찬이 내재되어 있던 그의 예술적 감각을 일깨워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진가가 되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 좋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다들 개성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획일화된 사회 통념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면 아이의 열린 미래가 닫혀버릴 수 있다. 제각기 색깔이 다른 아이의 미래를 열어주는 어른들의 황금열쇠가 아이의 인생을 반짝반짝 빛나게 할 수 있다.

윤세영 수필가